발레에서 ‘푸엥트(Pointes)’는 단순히 뒤꿈치를 들어 올린 까치발 자세처럼 보이지만, 발끝으로 선 자세를 유지하는 발레리나에게는 온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요동치는 멈춤’의 순간이다. 화가 성낙희(49)의 차분한 붓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울림이 꼭 그 같은 역설적 경험을 닮았다.
추상의 멋, 그림의 맛을 느끼게 하는 그의 개인전이 서초구 페리지갤러리에서 5월 9일까지 열린다. 지난 5일 개막했지만 코로나19 확산 탓에 개막식 등 일련의 행사는 취소됐다.
뒤숭숭한 바깥 사정은 아랑곳없이, 줄지어 벽에 걸린 신작들은 다채로운 색면의 향연을 펼친다. 지난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의 과거 작품과 비교하면 즉흥적이던 붓질이 차분해졌다. 역동적이던 표현들이 정돈됐고 색과 선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해졌다. 예전 작업이 작가의 감각에 의존해 그때그때 감흥에 따라 색과 형태를 쌓아올리는 방식이었다면, 몇 년 전부터 그는 과거 작품에서의 즉흥적 붓질이 남긴 흔적을 발견해 그것을 새 작업의 중심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옛 그림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 해 보여주는 식이다.
캔버스는 더 작고, 붓은 더 넓적해졌다. 화가는 숨죽여 붓을 들었고 숙고 끝에 색을 골랐다. 분할과 조화를 고민하고서야 움직였다. 면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색이 더해져 새로운 색이 나타난다. 아래에 깔린 색 위에 어떤 색이 올려지고, 몇 번이나 덧칠했느냐에 따라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악기 소리가 겹쳐질수록 오케스트라 연주가 풍성해지듯 색은 겹쳐진 채 조화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옛 작품이 붓질의 움직임과 율동감 때문에 ‘음악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근작들은 색의 교차와 배치에 의한 긴장감 자체가 악기의 현이나 울림통의 떨림과 같은 음악적 효과를 보여준다.
성낙희 작가는 파리국제예술공동체,쌈지스페이스,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등 다양한 레지던시에서 작업했고 2014년 이후로는 갤러리엠(EM)을 통해 신작을 보여주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