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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초기 인류도 언어로 소통하고 협력했다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 글항아리 펴냄

16만년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정교한 석기로 계획적 집단사냥

저승세계 염두에 두고 장례의식

"원시시대 역사성 지위 부정하고

'先史'라고 폄하하는 것은 잘못"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직립 보행을 시작한 현대 인류의 조상 호모 에렉투스는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빙하기의 환경변화를 뚫고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 중부 산악지대까지, 아시아 쪽으로는 중국 황허강까지 나아갔다. 이동이 어찌나 느리고 길었던지 그 사이 여러 새로운 인류가 등장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약 16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즉 네안데르탈인이다.

프랑스 라스코 지방에서 발견된 동굴벽화는 제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사진출처=구글이미지


기후가 불안정한 유럽과 중국은 아프리카와 비교해 생활 조건의 위험이 더 컸다. 다부진 체형의 네안데르탈인은 사냥을 해 고기를 얻었고 육식으로 체력은 물론 뇌에 아미노산과 단백질을 풍부하게 공급해 지적 발달을 이뤄갔다. 날씨 변화를 알 수 없으니 곡식을 재배해 수확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서 사냥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독일 니더작센주 레링겐 지역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사냥터에서는 매머드의 뼈 사이에 꽂힌 길이 240㎝의 창이 발견됐다. 네안데르탈인의 평균 신장은 165㎝. 키보다 더 큰 창을 휘두르려면 동료와의 협력이 필수다.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는 머리와 팔에 부상당한 흔적도 있다. 그렇게 다친 이를 움집으로 데려다 놓은 것도 동료였을 것이다. 포획된 큰 동물을 운반하고 먹을 수 있는 부위를 구별해 고기를 자르고 보관한 일련의 과정에서는 ‘분업’이 필요했다. 그렇게 ‘함께’ 했으니 서로에 대한 연대감도 있었으리라.

네안데르탈인은 저승세계를 염두에 두고 장례 의식을 진행한 최초의 인류가 됐다. 가까이 지내다 죽은 이를 위해 무덤을 만들었고, 화려한 부장품은 아니었지만 동물의 이빨과 조개껍질로 만든 장신구를 채워 저세상으로 보냈다. 독일 고고학자인 저자 헤르만 파르칭거는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그들을 자연의 온갖 위험에 그냥 내버려둬 썩은 시체가 되도록 방치하지 않았”던 네안데르탈인을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각하고 삶의 유한성과 삶 이후의 시간에 대해 사고를 했다”고 분석했다. “무덤이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감정적 연결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사람들이 죽은 자의 시신을 단순히 자연의 손에 맡기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설명과 함께.



신간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는 역사가 기록한 것보다 훨씬 더 길고 방대한 역사 이전의 시대를, 전 세계 각 대륙과 문화권을 대상으로 펼쳐 보인다. 본문만 1,000쪽이 넘고 참고문헌 목록 만 100쪽을 웃도는 ‘선사시대의 통사서’이자 세계 고고학의 집대성이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고고학자인 저자의 사명감이 책 곳곳에서 읽힌다. 그는 역사 이전의 시대를 선사(先史)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원시시대 조상들의 삶과 시간에서 역사성의 지위를 부정하고 ‘선사’라고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꼬집는다.

“문자 없이 말만 존재했을 때의 세계의 모습”을 더듬으며 살아온 그는 우리가 해독할 수 없을 뿐이지 당시에도 언어는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앞서 봤던 네안데르탈인만 하더라도 역할 분담이 필요한 계획적 집단 사냥, 고기를 자를 정교한 석기 제작 기술과 전수 등을 의사소통 없이는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수만 년을 관통하며 세계를 누빈다. 빙하기 고인류의 이동을 따라 유럽 알프스 산맥에서 발트해까지, 고대 이집트 문명을 비롯해 아프리카 사하라, 인도양과 이란 및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북극, 사막까지 샅샅이 살피되 어느 지역 어느 시기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고 ‘혁명’이라 불릴 만한 변화는 아니지만 “계속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자 했던 인간의 부당한 갈망”이 드러나고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문명은 연속적이고도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저자는 수만 년 전을 들여다 보게 해 주는 유일한 자료인 유형 유산(유물)을 올바르게 읽어내는 법이 필요하다며 “선사시대 유물은 우리에게 보이려고 그 시대가 일부러 남겨둔 흔적이 아니”기에 해석에 신중할 것을 당부한다. 역사를 읽고 배우는 이유가 과거의 교훈을 통해 현재를 분석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선사시대는 그렇게 존중받아야 할 우리의 역사가 분명하다. 5만4,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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