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 상장사들이 연말까지 1조2,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상환 만기를 앞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식시장이 폭락함에 따라 투자자들이 만기 전 주식 전환보다 현금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재무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B는 만기 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조기상환청구권)이 붙어 있지만 주가가 당초 전환가액보다 낮으면 만기까지 가서 쿠폰 수익률을 적용한 현금으로 청산을 받게 된다. CB 만기가 한꺼번에 몰리면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실적 부진에 빠져 있는 기업들의 자금난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이다.
22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중소·중견기업이 몰려 있는 코스닥 상장사의 올해 하반기 CB 상환 만기 규모는 1조1,981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 CB 만기가 도래한 주요 중소기업은 자동차부품 업체인 삼보모터스(4억원), 전자제품 업체인 아이엠(75억원), 한국테크놀로지(210억원), 삼원테크(23억원) 등이다. CB는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가진 자금조달로 CB 투자 당시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투자자는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 주식으로 전환하기보다 투자금을 다시 돌려달라는 상환 요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하는 가운데 국내 코스피·코스닥지수 역시 연고점 대비 35% 급락해 CB 투자자들이 주식 전환보다 만기 때 현금 상환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금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추가 CB 발행 등 돌려막기에 나서야 하는데 라임자산운용 사태 등으로 상황마저 여의치 않다.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CB는 물리적인 시간을 감안하면 3~6개월 전에 도중에 주식 전환을 할지, 만기 때까지 가서 현금 상환을 요구할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CB는 만기 3~6개월 전부터 상환 요구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 CB의 경우 대부분 만기 현금 청산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해당 기업의 재무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한계기업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락과 증시 급변동에 따른 변동성이 커 현금 상환 요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이중고에 시달릴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 지역의 기업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대구·경북 지역 상공회의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라는 권유로 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형태로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받았는데 현재 주가가 폭락한 상황이라 만기 때 일시에 현금 상환 청구가 들어올 위험이 있다”며 “코로나19 사태와 주가가 진정세를 보일 때까지 상환 청구를 유예하는 등 다양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적이 좋은 회사의 경우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해도 기다리거나 리파이낸싱(자본재조정)할 수 있지만 상황이 어려운 기업의 경우 기관 입장에서는 앉아서 손실을 볼 수 없어 만기가 오면 현금 상환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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