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고위직 인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돈을 풀라”고 한은 수뇌부에 이례적으로 직격탄을 날려 주목된다. 그는 “연준법을 모델로 한 한은법도 기업에 대출을 할 수 있는데 한은의 통화주의와 수동적 조직문화에 막혀 선제적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현진(58·사진) 한은 인재개발원 교수는 25일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약 3년이 지난 2011년에 한은법 80조를 개정해 영리기업에도 대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한은이 공개시장운영 관련 한은법 68조에만 의존한 대책에 머물지 말고 연준처럼 담대하게 돈을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차 교수는 워싱턴 사무소장과 기획협력국장 등 요직을 거쳤으며 한은 내 금융통화위원과 임원 등을 제외한 직원들 중 가장 높은 1급이다.
차 교수는 이날 미디어웹진 ‘피렌체의 식탁’에도 “한은이 미 연준처럼 담대하게 돈을 풀 때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의 “이제 세상은 코로나 전(BC)과 코로나 후(AC)로 나뉠 것”이라는 인용으로 글을 시작한 차 교수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미 연준처럼 한은이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준처럼 대출 방식을 활용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까지 한은이 직접 매입,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2011년 당시 한은 금융산업팀장으로 한은법 개정을 주도한 차 교수는 “한은법이 연준법을 모델 삼아 만들어져 법률상 미 연준은 가능한데 한은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일갈하며 “한은의 기업 대출 실행 조건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인데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짚었다. 차 교수는 “한은의 경우 기업 대출에 직접 나서려면 금통위원 7명 중 4명만 찬성하면 돼 7명의 위원 중 5명이 찬성해야 하는 연준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덧붙였다.
차 교수는 이어 “법률을 보지도 않고 한은 내부에서는 ‘미 연준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체념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며 “코로나 이전의 고정관념 때문인데 한은의 뿌리 깊은 ‘통화주의’와 수동적 조직문화에 막혀 있어서”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한은이 (대출로) 손해를 볼 때 금통위원이 연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돼 적극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있다”며 “2011년에도 이 부분을 개정하려고 했으나 한은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있어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역할에는 특혜 시비와 적정성 논란이 따라 정치적 위험도 있다고 인정한 차 교수는 그러나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에서 왕관을 쓸 자격이 없다”고 단언했다.
차 교수는 과거 금융위기 당시 한은의 삐뚤어진 처신과 도덕적 해이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지금 한은에는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금융위기를 맞아 한은이 주도적으로 수습에 나설 때 연준과 같은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글을 마쳤다./손철·백주연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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