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권사들의 유동성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발채무 관련 유동화증권들의 차환이 어려워지면서 증권사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떨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26일 한국기업평가는 “단기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증권사들의 유동성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2020년 증권사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중립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유동성 갭 대비 우발채무 부담이 큰 증권사로는 메리츠종합금융증권과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등을 꼽았다.
최근 단기자금시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심화된 가운데 S&P500, 유로스탁스50 등 해외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의 증거금 보전 수요(마진콜)가 크게 늘었다. 증권사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CP(기업어음) 규모가 급증하면서 단기 금리가 크게 상승했다.
한기평은 ELS 발행이 활발했던 일부 대형사 위주로 조달 부담이 클 것으로 분석했다. 삼성증권(016360)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KB증권, 하나금융투자, NH투자증권(005940) 등의 경우 파생상품의 증거금 요청규모가 1조원 내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현금을 일시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유동성 부담이 집중된다. 다만 하나금융투자의 경우 올해 5,000억원 규모 증자와 5,000억원 선순위채 발행 등으로 일정 수준 리스크가 보완됐다고 덧붙였다.
한기평은 파생상품의 익스포저에 따라 증권사들의 실적이 갈릴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보유한 ELS 미상환잔액은 총 68조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삼성증권이 16조원, 한국투자증권 13조원, 미래에셋대우 11조원, KB증권 8조원 순이다. 한기평은 “주요 기초자산이 연초대비 20~35% 이상 떨어지는 등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증권사의 마진콜 부담이 크다”며 “향후 증시 방향성과 변동성에 따른 실적 부담이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사들이 보유한 자산의 평가손실도 클 것으로 예상했다. 증권사들은 자산유동화를 통해 실물 자산에 많은 신용익스포저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항공업과 해운업, 해외부동산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증권사들의 항공기리스, 선박금융,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의 회수 위험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증권사 가운데선 메리츠증권의 신용익스포저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메리츠는 자기자본 대비 38.3%를 신용익스포저로 보유하고 있다. 각각 항공기 2,458억원, 선박 4,702억원, 해외PF 6,794억원 등이다. 뒤이어 미래에셋대우(7,801억원), NH투자증권(4,046억원)도 많은 규모를 차지했다. 한화투자증권(003530)과 하이투자증권도 각각 1,816억원, 7,863억원 보유해 자기자본 대비 높은 비중을 보였다.
IB영업이 위축된 가운데 수수료수익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기평이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증권사 16곳의 지난해 영업수수료수익 비중은 47%다. 그러나 금융상품과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 위축과 주식, 채권 발행시장의 영업 위축으로 신규약정 체결이 줄어들면서 수수료수익도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한기평은 증권사들의 자본시장 충격 대응에 따라 신용등급을 조정할 계획이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파생상품과 우발채무 등 잠재적 재무부담에 대한 유동성 대응력이 불충분하다고 봤다. 자산가치 변동 부담, 투자자산 부실화 위험 또한 향후 재무건전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기평은 “현 신용도에 미흡한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거나 유동성 대응력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증권사들에 대해 신용도 하향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경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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