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신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선 업무에서 줄줄이 발을 빼면서 부동산 개발 시장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부동산 PF 시장에서 증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부동산 PF 시장에서 증권사가 주관하는 딜은 통상 전체 시장에서 80~90% 정도로 추산된다. 최근 은행이 부동산 PF에 대해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데다 저축은행도 지난 2011년 부동산 PF 부실의 발단이 된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부동산 PF 익스포저를 크게 줄인 상황이다. 증권사마저 부동산 PF를 못하게 될 경우 신규 부동산 개발 사업이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금융시장 불안과 실물경제 위축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부동산 PF 시장이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고 해석했다.
◇부동산 PF 큰손 됐는데…신규 심사 잇따라 중단=증권사들의 부동산 PF 주선 규모는 매년 크게 증가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증권사들의 부동산 PF 채무보증 규모는 26조2,000억원으로 2013년 말 10조6,000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증권사들의 신용 보강을 통해 발행되는 부동산 PF 자산담보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의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부동산 PF 시장에서 증권사들이 차지하는 영향력도 그만큼 커져 PF 시장의 큰손이 됐다.
하지만 최근 기존에 발행된 PF ABCP 유통 시장이 갑자기 경색되면서 증권사들마저 신규 딜 주선에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확산으로 금융 시장의 유동성 리스크가 전반적으로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PF 담당 임원은 “돈이 돌지 않는다”며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간 공격적인 영업으로 부동산 PF 채무보증 한도에 여유가 없는 증권사는 물론 한도에 여유가 있는 증권사들도 신규 딜 주선을 주저하고 있다. 한 증권사 PF 담당자는 “부동산 PF 기발행 규모가 한도 대비 60% 수준으로 아직은 여유가 있다”면서도 “한도가 남아 있지만 최근 시장에서 인수가 안 되고 신규 발행이 어렵기 때문에 자기자본으로 인수해야 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한도가 남아 있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규 딜은 물론 기존에 승인이 난 건까지 전면 재검토에 나서는 증권사도 있다. 한 증권사는 최근 기존에 승인 난 딜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실시하고 일부 사업장에 대해서는 승인을 취소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발 금융경색으로 증권사들이 부동산 PF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갑자기 돈이 많이 필요해지면서 신규 자금 조달이 안 되고 있다”며 “기존에 승인 난 사업 중에서는 이미 약정한 것만 진행하고 승인은 났지만 약정이 안 된 사업은 취소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신탁사, 긴급 리스크 점검 나서=부동산 업계도 증권사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동산신탁 업계의 한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부동산 PF를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한 증권사들이 많지 않다”면서도 “실제 실무자들과 얘기해보면 사실상 신규 사업을 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라 신규 사업을 중단했으며, 기승인 난 사업 중에서도 실행이 안된 건은 당분간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이라고 전했다.
일부 신탁사는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에 대비해 진행 중인 사업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섰다. 특히 초기 사업비인 토지비 정도만 부동산 PF로 조달하는 차입형 신탁과 달리 토지비와 건설비 등을 함께 조달하는 책임준공형 신탁이나 관리형 신탁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통상 책임준공형 신탁이나 관리형 신탁은 초기 사업비를 일시대출로 조달한 후 분양 사업으로 나머지 사업비를 조달하는 데 분양이 저조할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추가로 한도대출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금융시장이 전반적으로 경색되면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캐피털사나 저축은행 등이 한도 대출을 못하게 되면 신탁사가 자기자본으로 사업비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그간 책임준공형 신탁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온 하나자산신탁이나 KB부동산신탁과 같은 회사들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최악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부도가 난 한국부동산신탁이나 대한부동산신탁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신탁사 부사장은 “최근 고유자금을 조달하는 재무팀에서 금융시장 상황과 관련해 자금 지출을 엄격하게 하고 회수가 가능한 사업장은 당장 자금 회수에 나서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사내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