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랭킹(페덱스컵) 1위를 달리는 임성재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스윙 영상과 함께 “4년 전 제 스윙, 지금이랑은 다르죠?”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슬로모션 영상을 보는 듯한 느린 백스윙이 트레이드 마크인 임성재지만 영상에 담긴 4년 전 백스윙은 완전히 달랐다. ‘휙’ 하고 순식간에 올라가는 백스윙에 “3배속 아니냐” “다른 사람 같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3~4년 전쯤 4개 투어 대항전 ‘더퀸즈’ 대회 당시 신지애와 같은 조로 경기했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지애 언니랑 팀플레이, 또 한 번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고 적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막혀 앞으로 못 가는 스포츠계가 과거행 타임머신에 올라탔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팬들은 지난 2018·2019년 경기를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최근 MLB 측이 코로나19 확산이 멈추기까지 이전 두 시즌 경기를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MLB.TV’를 통해 시작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2018·2019 시즌의 총 4,800경기 영상이 제공된다. 더 먼 과거로 떠날 수도 있다. 유튜브 ‘MLB 보관소(MLB Vault)’에 들어가면 1999년 데이비드 콘의 퍼펙트게임, 2008년 스즈키 이치로의 3,000안타 경기는 물론 1952년 뉴욕 양키스와 브루클린 다저스(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전신)의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도 처음부터 끝까지 즐길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2020 시즌 개막일이었을 27일(한국시간), MLB 보관소가 스트리밍 서비스한 2016년 월드시리즈 7차전은 10만이 훌쩍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실시간 채팅에도 1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2016 월드시리즈에서는 시카고 컵스가 무려 108년 만의 우승에 성공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월드컵 앳 홈(WorldCup@Home)’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역대 월드컵 명경기를 풀타임 영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FIFA가 자체 비디오 아카이브를 일반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경기를 온라인 팬 투표로 선정해 하나씩 공개하고 있다. 그중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B조 네덜란드-스페인전은 조회 수 53만을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몰락이 시작된 이 경기는 로빈 판 페르시(네덜란드)의 16m짜리 ‘돌고래 헤딩’ 득점 등 명장면을 여럿 남겼다. 미국프로풋볼(NFL)과 미국프로농구(NBA)도 유료 콘텐츠를 최근 무료로 전환했다. NBA 현역 최고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의 신예 시절 영상과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1990년대 활약상이 농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PGA 투어가 준비한 ‘추억 소환’ 콘텐츠의 주인공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다. 메이저대회 15승을 포함해 통산 82승을 올렸으니 하이라이트 자료만도 ‘한 트럭’이겠지만 요즘 유독 인기 있는 자료는 1996년 마스터스 연습 라운드다. 21세였던 아마추어 우즈는 까마득한 대선배인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와 같은 조로 코스점검에 나섰다. 당시 우즈는 파머와 니클라우스로부터 “우리 둘의 마스터스 우승을 합친 것(10승)보다 더 많이 마스터스를 제패할 것”이라는 덕담을 들었다. 특히 니클라우스는 “우즈가 당장 우승할 준비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20년간은 여기서 매번 우승후보로 꼽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망은 예언처럼 맞아떨어졌다. 우즈는 1996년 마스터스에서는 컷 탈락했지만 이듬해 우승을 시작으로 전설의 길을 걸었다. 44세였던 지난해 마스터스 다섯 번째 우승으로 파머의 4승을 넘고 니클라우스의 6승에 1승 차로 다가섰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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