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느닷없이 온다. 사람은 쉽사리 바뀌지 않지만 환경 변화는 그들이 과거를 고집할 수 없게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수많은 기업의 사무실 풍경을 바꿨다. 예상치 못했고 준비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광범위하게 빠른 속도로 도입된 재택근무. 한 달이 지난 실험의 결과는 어떨까.
“왜 지금까지 ‘지옥철’을 타고 사무실에 꾸역꾸역 출근했을까요. 출퇴근에 쓰는 에너지를 아껴 일에 집중하니 업무 효율이 훨씬 더 오르네요.”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서울 여의도 A은행 본사에 앉아 있었을 권지민(37)씨. 그는 재택근무에 후한 점수를 줬다. 관리자급인 권씨는 전화와 사내 메신저, 화상회의 등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었다고 지난 한 달을 돌아봤다. 특히 “업무 효율성이 높아져 윗사람을 향한 ‘보여주기식’ 초과근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재택근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부터 구체적인 지침까지 논의가 활발하다. 상대적으로 재택근무에 익숙한 스타트 업계 관계자들은 △임직원 모두가 자신의 업무시간을 공개하고 △업무시간 내 사내 메신저 접속 상태를 유지하며 △전화나 화상으로 메시지를 나누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캘린더 구독 서비스 린더에서 데이터 생산 운영을 담당하는 양효진 히든트랙 매니저는 “재택근무를 할 때는 비접촉으로 인한 지시·업무이행 오류를 줄이기 위해 오히려 비언어적 소통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며 “모든 업무지시는 문서로 기록해두되 상대방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은 화상이나 전화로 세심하게 확인하는 추가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일터인 집이 업무에 최적화돼 있지 않은 직장인들은 “차라리 출근하겠다”고 외친다. “유치원 등원이 미뤄진 아이가 3분에 한 번씩 ‘아빠’를 찾습니다. 팀장 전화를 받을 때 애가 떼를 쓰면 눈앞이 캄캄해져요. ‘재택근무=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내 시선도 부담스럽죠”. 한 대기업 기획팀 소속 정구진(40)씨는 영유아 자녀를 둔 임직원에게 허용되는 재택근무를 3월 초 이틀만 쓰고 다시 신청하지 않았다.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근무방식이 확산하면서 특수를 누리는 곳도 있다. 직원이 어디에 있든 접속만 하면 사무실처럼 일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관련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채팅과 화상회의, 실시간 동시 문서 편집 등이 가능해 많은 기업이 선호하는 구글 지스위트를 기업 고객에 서비스하는 베스핀글로벌은 코로나19 이후 고객사의 문의가 10배 이상 늘었다. 자체 개발한 클라우드 플랫폼을 제공하는 더존비즈온 역시 코로나19 이후 견조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가 잦아들 때까지 당분간 재택근무는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면 지난 한 달간의 실험으로 드러난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해 보다 더 진화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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