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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코로나 감옥'서 피어나는 사색의 시간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은행나무 펴냄





“우리가 75억 개의 구슬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감염 가능자이고 안정적인 상태이다. 갑자기 감염된 구슬 하나가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굴러온다. 감염된 구슬은 첫 환자이고, 멈추기 전 적당한 시점에 다른 두 구슬과 부딪힌다. 두 구슬은 튕겨 나가 다른 두 개와 거듭 부딪친다. 이후 또 부딪치고, 또, 또…”

물리학 박사이면서 소설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 상을 받은 저자는 전염의 연쇄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 중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신간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를 썼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자유지만 가택 연금 상태”라고 한 그는 혼돈과 공포의 한복판에서 과학자다운 객관적 언어와 소설가다운 정제된 비유로 시대를 진단했다.

저자는 “바이러스 확산은 의학적 위급 상황이기에 앞서 수학적 비상사태이다. 사실 수학은 숫자의 학문이 아니라 관계의 학문이기 때문”이라며 “전염은 우리 연결 관계의 감염”이라고 일깨운다. “전염의 시대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을 지적하고 영국 시인 존 던의 ‘인간은 섬이 아니다’를 되새기며 세계화 시대가 피해갈 수 없는 공동책임의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지난 2월 29일부터 쓰기 시작한 글은 한 달 치가 모여 책으로 엮였고, 한국을 포함한 세계 26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이 또한 세계가 빠르게 돌아가는 하나의 덩어리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저자는 책의 수익금을 코로나19와 싸우는 이탈리아 현지 의료·구호단체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일치가 없는 곳에, 벽돌 틈새에서처럼 잡초가 자란다. 과학의 잡초는 추측, 조작, 허위사실이다. 과학과 추정의 합의가 없는 곳엔 반쪽자리 진실과 거짓만이 피어난다”고 한 그는 “전염의 시대에 투명한 정보는 권리가 아니라 필수적인 예방 의학”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공포(panic)의 어원이 큰소리를 질러 주위를 놀라게 했던 그리스 신화 속 삼림의 신 판(Pan)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를 덧붙여 저자는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는 가짜뉴스, 혐오 감정 등 시끄럽게, 동요하게 만드는 것들을 경계한다.

“이 보이지 않는 정체 구간에서, 우리는 정상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 여태껏 일상생활이 이처럼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정확히 그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던 정상 상태가 한순간에 우리가 지닌 가장 신성한 것이 되었다.”

성서 시편 90장의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다’를 자주 떠올린다는 저자는 “우리의 날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공백으로만 여겨지는 이 날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하소서”라고 고쳐 읊는다. 코로나 사태의 시기를 ‘생각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책은 얇지만 사유는 겹겹이다. 8,5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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