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마나 한 소리겠지만 자연재해는 부자나 빈자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덮친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일대를 강타하자 초강대국 미국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죽어 나간 주민들 대다수는 물에 잠긴 저지대 빈민가에 살던 흑인들이나 빈민들이었다.
또 자연재해는 평소에는 감춰졌던 사회의 민낯과 정권의 실력을 폭로하기도 한다. 2010년 1월 아이티는 규모 7.0 지진으로 무려 31만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가 재난 대비를 위한 인프라 투자를 거의 하지 않은 탓이었다. 반면 같은 해 2월 칠레는 강도가 500배나 큰 규모 8.8의 지진을 겪고도 사망자가 500여명에 그쳤다. 2008년 미얀마 군부는 사이클론 나르기스에 무려 13만여명의 희생자를 내고도 처음에는 국제 구호팀의 입국을 거부했다. 가난과 부패, 독재라는 처참한 현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정권이 흔들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한국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의 모범사례로 꼽고 있다. 하지만 재난이 사회적 약자를 주로 공격한다는 쓰라린 진실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신병원 폐쇄병동이나 요양원, 콜센터 등의 집단감염 사태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를 드러냈다. 최근 해고 사태는 최저임금 급등, 주52시간제 등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후유증과 맞물려 영세사업장, 청년층, 비정규직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9일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으로 아수라장이 된 일선 학교의 모습은 우리 교육정책의 민낯을 드러냈다. 학생과 교사들이 학습자료를 주고받는 데 쓰는 EBS 서버는 과부하가 걸리면서 걸핏하면 먹통이 되기 일쑤다. 출석 체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판에 쌍방향 수업은 언감생심이다.
심지어 6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전국 초등학교 교사와 함께 시범적으로 실시한 온라인 원격 회의조차 영상이 끊기고 말았다. 정부 차원에서 홍보 목적으로 준비한 행사조차 이 모양이다. 오는 16일 초·중·고교가 전면적인 온라인 수업에 들어갈 경우 학생 400만여명이 동시 접속하면서 더 큰 혼란이 우려된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한국의 교육정보화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디지털 기기 활용도, 인프라 구축 등 대부분의 측면에서 최하위권이다. 지하철, 버스 등에도 깔려 있는 무료 무선인터넷도 상당수 학교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이게 문재인 정부만의 잘못이랴. 김대중 정부 때 교육 선진화 작업을 위해 1조원을 투자한 이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는 20년간이나 공교육 디지털 투자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는 집권세력이나 정치권이 구걸해야 할 표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육부의 주먹구구 행정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교육부는 출석이나 평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원격수업이 실시되기 불과 이틀 전에 발표했다. 유 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전문가들 중심의 교육행정보다는 학생과 학부모, 교육현장에서 생기는 일들을 다년간 보아 온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항변했지만 현실은 실력 부족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다.
최대 피해자는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다. 외국어고·국제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들이 일찌감치 원격 수업을 대비해온 반면 일반고의 경우 무선인터넷과 기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고 학생들이 학습권 피해를 입은 반면 사교육에 의존할 수 있는 강남 학생들이나 교육환경이 좋은 특목고 학생들은 입시에 더 유리해졌다.
그동안 역대 정부나 정치권은 무상급식, 무상교복 등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 만한 정책에 집중했다. 현 정부도 자사고 폐지 등 교육 정책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 교육을 정책이 아닌 정치로 접근한 대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같은 용(龍)의 자녀가 아니라 가재나 붕어, 개구리의 자녀들이 치르고 있는 중이다.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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