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영학 수업 시간에 80여명의 학생이 거의 다 ‘삼성은 일본, LG는 중국’이라고 해 의아한 적이 있다. 당시 교수가 글로벌사 목록을 제시하며 국적·업종을 쓰라고 했는데 한국 기업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굳이 국적을 내세우지 않은 결과로 보였다.
그런 분위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오히려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뀔지 기대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선에서 한국이 롤모델로 떠올라서다. ‘정부가 이 정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던 게 서양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것이다.
제프리 글렌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는 기자에게 “한국이 효율적인 진단기술과 감염자 추적, 투명한 정보공개, 양호한 의료체계, 사재기 없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서양이나 중국과 달리 지역·국가 봉쇄 없이 코로나19의 숨통을 틀어쥐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바이러스 원죄에다 통계조작 논란, 수출한 진단키트·마스크의 불량품 논란에 휩싸였다고도 했다. 국방·바이오컨설팅사인 미국 ADI의 찰스 하비 고문은 “많은 나라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무능하면서도 과학을 정치화했고 취약한 의료체계와 국민의 공동체 의식 부재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민 중에는 ‘미국·유럽·일본 등의 국가경영 시스템이 저렇게 취약할까’라며 자긍심을 갖게 됐다. 그것이 투영된 게 4·15총선이다. 소프트파워가 커지며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응답이 65%라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그 자신감은 앞으로 수많은 문제 해결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14세기 1억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흑사병) 이후 상공업이 발전하고, 미국에서 시작된 스페인 독감(1918~1920년)이 미국의 경제대국화로 이어지는 등 감염병이 ‘패러다임 전환’을 끌어낸 사례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세계적으로 해를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20일부터 종교·유흥·실내체육시설과 학원의 ‘운영제한’ 권고 등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자칫 ‘트로이의 목마’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는 그리스 연합군이 마치 감염병 사태로 거대한 목마를 신에게 바치는 것처럼 꾸미며 그 안에 군인들을 숨기고 퇴각한 뒤 역습해 트로이를 멸망시킨다. 목마를 끌고 와 축제를 벌이던 트로이는 10년간 버티던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페인 독감 때도 바이러스가 첫 여름에는 좀 수그러들었다가 가을 이후 재창궐해 세계적으로 5,000만명가량이 숨졌다.
결국 코로나19는 치료제와 백신이 나와야 해결될 문제이나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조만간 개발할 수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겨우 후보물질을 찾았거나 동물실험 또는 임상1상 추진 단계인데 주가가 요동치는 것이다. 해외에서 ‘렘데시비르’나 ‘클로로퀸’ 등 기존 약물을 코로나19 환자에게 투여하는 임상도 부작용이 적잖은 판인데 마치 새 치료제나 백신을 머잖아 내놓을 수 있다는 식이다. 익명을 원한 제약사 연구소장은 “제대로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려는 실력이나 노력도 없이 주가 부양에 관심 두는 곳이 많다”고 털어놨다.
바이러스 팬데믹을 다룬 영화 ‘컨테이젼(2011년 개봉)’에서 대중을 현혹해 가짜약을 팔며 떼돈을 버는 1인 미디어와 그가 흘린 정보로 주가를 띄우는 세력이 나오는데 그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과학계 일부도 부화뇌동해 정치와 엮이거나 가짜뉴스 양산을 방치하고 있어 과학 생태계를 허무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코로나19로 논문 이전의 페이퍼를 동료평가를 받지 않은 채 많이 공개하는데 가짜뉴스라고 볼만한 게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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