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열린 ‘제18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강연 막바지에 책 한 권을 인용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지난 2003년 저작 ‘새로운 금융질서(The new financial order)’였다.
‘21세기의 리스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그전까지 경제학의 변두리에 물러나 있었던 리스크 관리라는 이슈를 집중 조명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불쑥불쑥 발생하는 경제적 변화와 악화하는 소득 불균형에 대응하려면 금융을 통한 리스크 관리의 범위를 대폭 넓히고 이로써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실러 교수의 주장이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금융의 민주화’와도 이어진다.
윤 원장은 “실러 교수가 말한 ‘금융의 민주화’라는 개념을 앞으로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며 “리스크 관리의 영역을 넓혀 실물자산에 대한 위험관리뿐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위험관리로까지 금융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의 건전한 리스크 관리 원칙을 사회 전체로 확대해 더 많은 사람이 금융혁신의 수혜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 원장이 인용한 ‘금융의 민주화’의 개념이다.
실제 실러 교수는 이 책에서 세대 간 리스크 공유가 이뤄지도록 하는 세대 간 사회보험제도, 대출기관이 개인·기업·정부의 소득에 연계해 대출을 내주는 제도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금융이 그저 ‘부자들이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금융거래의 기회를 제공하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 보다 더 잘 살게 만들어줄 수 있는 힘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서다.
최근 잇단 사고로 금융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윤 원장이 실러 교수를 인용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실러 교수는 금융이 불법과 사기가 만연한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금융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다”며 금융의 순기능과 혁신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윤 원장은 이날 “코로나 난국을 타개해가는 과정에서도 나타나듯 금융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도) 금융사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많이 고쳐질 수 있다”고 독려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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