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장애인·노약자 모두가 마음껏 돌아다니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무장애)’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중증장애를 딛고 설계사무소 최고경영자(CEO)로 거듭난 고용현(사진) 유에이그룹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22일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장애 어린이와 소외받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늘려야 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 대표는 지체장애 3급인 중증장애인이다. 혼자서는 똑바로 서거나 뛸 수 없는 처지다. 그의 왼쪽 다리에 항상 보조기기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하지만 근성으로 고난을 극복하며 도시주거 설계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서울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서울 서초동 푸르지오써밋, 위례신도시 아이파크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고 대표에게 장애는 반려자 같은 존재다. 미우나 고우나 더불어 살아왔다. 어린 시절 모욕의 대상이 될 때는 절망에 빠지고는 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맞닥뜨린 불행에 좌절한 적이 많았다”며 “여기서 빠져나오는 데 한참 걸렸다”고 되돌아봤다.
이런 고 대표를 늪에서 꺼내준 이는 바로 어머니였다. 유도 3단뿐 아니라 스킨스쿠버·자전거까지 섭렵하며 세상의 시선과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모친 덕분이었다. 그는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는 저를 위해 노구를 이끌고 함께 한라산 백록담까지 오르기도 했다”며 “‘너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르침 덕분에 항상 치열하게 살았다”고 회상했다.
장애는 고 대표를 도시주거 설계전문가로 만들었다. 건축공학과를 택한 것도 자신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주거설계 본부장·개발본부장 자리까지 이어졌고,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따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버릇도 건축설계사로서 강점이 됐다. 그는 “남들에게 안 보이는 것을 포착해서 제안하는 습관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앞으로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그는 “세상은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며 “누구나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고 대표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귀향했다. 자신을 키운 제주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 내린 결정이다. 최근 확보한 마스크 1,000개도 지역 취약계층에 나눠줄 계획이다. 도시주거 설계전문가로서 역량도 발휘하려 한다. 고 대표는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에 적합한 공간 설계를 하고 싶다”며 “기회가 생기면 원도심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태기자 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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