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 명명식에 참석해 “‘해운 강국’은 포기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며 해운 산업의 재건 의지를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 속에서 바닷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해운업을 적극 지원하고 새로운 성장모델을 구축해 ‘해운업의 르네상스’를 이뤄내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명명식에서 “2017년 한진해운 파산으로 해운산업이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는 결국 극복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명명식은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해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 선박의 이름을 붙여주는 행사다. 문 대통령은 이번 명명식에 대해 “대한민국 해운 재건의 신호탄을 세계로 쏘아 올리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알헤시라스호는 20피트 컨테이너 2만3,964개를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현존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이다. HMM(옛 현대상선)이 발주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12척 중 첫 번째로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했다.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위기에 처한 해운산업 재건을 위해 2018년 4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한데 이어 같은 해 7월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출범시켰다. HMM 알헤시라스호도 해양진흥공사의 지원 등을 통해 건조 비용을 조달했다.
하지만 HMM의 초대형 선박 건조에도 불구하고 해운업계는 여전히 폭풍 속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물동량이 감소하는데다 운임마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항로 중 하나인 미주항로 물동량은 1·4분기 448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전년 동기 대비 11.1% 감소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무역 규모가 전년보다 최대 32% 감소할 수 있다고 봤다. 국내 선사들은 기록적인 저유가 덕분에 기름 값을 아껴가며 간신히 이익을 내고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돈줄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내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조금이나마 이익이 나고 있기 때문에 영업 측면에서 큰 걱정은 없지만, 문제는 현금 흐름”이라며 “금융기관들이 해운업계를 외면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 이대로 가다 ‘흑자도산’ 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이날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해운업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1조2,5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해수부는 해운 재건을 위해 설립된 해양진흥공사를 중심으로 해운 금융 지원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해양진흥공사는 먼저 해운사의 기존 선박에 대한 후순위 투자로 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선박 매입 후 재대선(S&LB) 중인 선박 전체에 대한 올해 원리금 납부도 유예한다. 신용보증기금의 ‘코로나19 회사채 발행 지원프로그램(P-CBO)’ 내 해운기업 지원 규모를 최대 2,600억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또 중소선사에 대해서는 회사채를 최대 1,000억원까지 매입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은 HMM에 대한 유동성 지원에 집중됐다. 전체 지원 규모 1조2,500억원 가운데 37.6%(4,700억원)가 HMM 몫으로 돌아갔다. 해양진흥공사는 주채권기관인 산업은행과 함께 HMM의 만기도래 선박금융 상환액 가운데 최대 4,700억원을 지원한다. 해운업계는 회사채 매입 등 각종 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속도가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에 해양진흥공사는 심사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신속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회사채 매입 등이 6월로 넘어가면 지원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조지원기자 허세민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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