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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노총 ‘무주공산’ 삼성그룹에 파고들어 세불린다

'80년 무노조' 삼성의 상징성…양대노총 꿈틀

삼디 노조 1,000여명 넘게 모집하며 빠른 확장

한국노총, 교섭권 위임받으며 사측 압박 나서

노조연대, "'JY 대국민사과'에 무노조 폐기 선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무노조 경영’ 원칙이 깨진 삼성그룹에 파고들고 있다. 특히 제1노총에서 밀려난 한국노총은 ‘국민기업’ 삼성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도 소규모 모임에 노조 설립을 위한 전략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포섭에 나섰다. 양대노총은 업종 연관성이 크지 않은 산별노조를 활용해 상위노조 가입을 유도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재계는 이 같은 움직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위기상황에 처한 삼성의 경영환경에 또 다른 악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 재계 및 노동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 노동조합은 가입자 1,000여명을 모으는 데 성공하며 사측과 노조 전임자 규모, 노조사무실 보장 등을 담은 단체협약을 만들기 위한 교섭을 요청했다. 사측은 한 차례 이들과 교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디스플레이 노조가 설립된 시점은 지난 2월17일로 노조 간판을 단 지 두 달여 만에 1,000명 넘는 직원들이 모인 것이다. 이 회사 전체 임직원은 2만5,000여명이다. 상위단체인 한국노총 금속노련 관계자는 “1월에 사측에서 성과급(OPI)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일이 도화선이 돼 가입자가 빠르게 늘었다”며 “(삼디 노조는) 현재 삼성그룹 소속 노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교섭권을 상위단체인 우리 측에 위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을 상위단체로 둔 삼성전자(005930) 노동조합(4노조)도 지난 24일 사측에 단체교섭을 공식 요청했다.

◇삼디 노조 어떻게 세 불렸나…‘삼성’ 상징성에 양대 노총 총력전=삼성디스플레이 노조 설립은 양대노총의 세 불리기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올해 초 직장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삼성디스플레이에도 노조를 만들겠다’는 글이 올라오며 활동을 공식화하자 민주노총은 미조직전략조직실이 직접 나서 노조 설립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한국노총도 이에 질세라 변호사와 노무사로 구성된 노조설립법률지원단을 지원하며 ‘내 편’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양대노총의 삼성 노조 잡기의 승자는 한국노총이다. 삼성디스플레이 노조가 한국노총으로 이끌리며 비슷한 시기에 노조를 설립한 삼성화재도 업종 연관성이 있는 금융노조가 아닌 한국노총 산하 공공연맹에 가입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삼성그룹에 집착하는 것은 노조운동에서 삼성이 갖는 상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무노조 경영’ 원칙이 깨진 후 빈틈을 파고들어 만들어진 삼성노조와의 연대는 제1노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단 지난 2018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통해 삼성그룹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단체는 민주노총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후의 세력확장전(戰)에서는 한국노총이 우세했다. 노동계에서는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급여·복지 등 직원 개개인이 공감할 수 있는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춘 한국노총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삼성그룹 직원들이 사측과 극한의 대립구도를 형성했던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계 관계자는 “여전히 삼성그룹 소속 직원들은 강경 노선인 민주노총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출범식에서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이 출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노 싸움 가중될까 재계 전전긍긍=양대 노총이 삼성그룹을 무대로 세력다툼을 벌이는 상황에 대해 재계는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역사상 처음으로 ‘제1노총’ 지위에 오른 민주노총이 근소한 차이로 2위로 밀려난 한국노총의 세 불리기를 모른 척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집요하게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칫 집행부를 장악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던 포스코·삼성르노 등의 사례처럼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노조활동에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양대 노총 입장에서 삼성그룹 같은 대기업은 조합원 규모 등은 물론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는 조합비 측면에서도 꼭 확보해야 할 고지”라며 “게다가 무노조 경영 원칙 아래 오랜 기간 노동단체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만큼 조직을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신속한 세력 확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하반기 실적 가이던스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노조 간 확장 다툼이 삼성그룹을 포함한 대기업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후발주자였던 한국노총이 삼성그룹 내에서 더 강한 지지를 받는 것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노동운동 노선을 선택하려는 노동자 개개인의 선택이 반영된 것”이라며 “다만 양 노총의 선명성 경쟁이 조직 확장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날 경우 오히려 이제 시작한 노사관계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로 노사관계보다 기업 존립이 어려워진 시국”이라며 “투쟁 일변도의 강성 노동운동이 아닌 합리적 선택과 온건·상생적 전략으로 발전한다면 코로나19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달 기한 대국민 사과에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담길까=한편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노조는 다음 달 중순께 삼성그룹노조연대를 발족하고 힘을 합친다는 계획이다. 노조연대에는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삼성웰스토리·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삼성화재·삼성 SDI 등 조합 소속 6개 삼성 계열사 노조가 참여한다. 노조연대의 초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맞춰져 있다. 이들은 5월 11일로 기한이 잡힌 대국민 사과에서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원칙을 완전히 ‘폐지’ 했다는 점을 이 부회장이 직접 선언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법적으로 노조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요청한 실질적인 노조활동과는 거리가 멀다”며 노조연대의 힘을 모아 사측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노조연대는 노조 설립방해 혐의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삼성준법위와 발맞춰 나간다는 방침이다. 준법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조연대로부터 공식적인 협력 제안은 아직 없었지만 준법위가 내걸고 있는 부분과 삼성노조연대가 이야기하는 부분 겹치는 것이 많아 원칙적으로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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