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24일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투자해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1위에 오르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괄목할만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1위 등극을 위한 핵심 분야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는 경쟁업체와의 격차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스템반도체 중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이미지센서 시장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기존 절대 강자인 퀄컴과 소니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다.
1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4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는 54.1%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지켰고 삼성전자는 15.9%로 2위에 올랐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TSMC의 점유율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TSMC의 1·4분기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포인트 늘어난 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2%포인트 줄었다.
1·4분기 수익성도 TSMC가 삼성전자를 크게 앞섰다. TSMC의 1·4분기 영업이익은 1,285억대만달러(5조2,000억원)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3조9,900억원)보다 1조원 이상 많았다. 더구나 TSMC의 영업이익은 파운드리 사업으로만 올린 데 비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모두 합친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4분기 파운드리 사업 실적은 중국 HPC(고성능 컴퓨팅) 수요 감소의 영향으로 전 분기보다 소폭 하락했다”고 말했다.
극자외선(EUV) 초미세 경쟁에서도 TSMC가 삼성전자에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는 올해 이미 5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간 반면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5나노 제품 본격 생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최대 고객인 애플이 스마프폰 사업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삼성전자 대신 TSMC에 AP 물량을 몰아주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 입장에선 아쉬운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AP 분야에서도 퀄컴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0의 국내용 제품에 자사 AP인 ‘엑시노스’ 대신 퀄컴의 ‘스냅드래곤 865’를 채택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의 내수용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자사 AP인 엑시노스가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삼성 엑시노스가 그래픽 등의 성능과 가격 측면에서 퀄컴 스냅드래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점을 이유로 꼽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엑시노스의 성능이 떨어진다는 한 주주의 질문에 “무선 부문에서 엑시노스가 자사 제품이라서 쓰는 것은 아니고 경쟁논리를 바탕으로 칩셋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퀄컴은 33.4%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전년보다 2.2%포인트 성장한 14.1%의 점유율로 애플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이미지센서 분야에서는 부동의 1위 소니와 점유율 격차는 크지만 삼성전자가 기술력에서는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업계 최초로 6,400만화소 이미지센서를 출시하며 “2030년 이전에 이미지센서 분야 1등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8월에는 업계 최초로 ‘1억 화소’의 벽을 깬 1억800만화소 이미지센서를 공개했고 지난해 9월에는 픽셀 크기가 0.7㎛(마이크로미터)인 제품도 업계에서 처음 선보였다. 삼성전자의 1억800만화소 이미지센서는 올해 출시한 갤럭시S20 울트라에 적용됐다.
박용인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센서사업팀장(부사장)은 최근 삼성전자 뉴스룸 기고문에서 “사람의 눈을 능가하는 6억화소 이미지센서를 포함한 무궁무진한 혁신을 위해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 시장 점유율은 소니에 크게 뒤져 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노시스템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는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17.9%의 점유율로 소니(49.1%)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