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습니다. 넓고 깊게 살펴야 이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쇳말로 이슈를 분석하는 <이슈 후벼파기>입니다.
주인공: 한문철, 손해보험사
주제 : 손보사와 싸우는 교통사고 소송 전문 변호사
열쇳말 : 공분, 한문철TV, 교통령
#개요
요즘 손해보험사들 사이에선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청와대 국민청원, 하나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한문철 변호사(정확히는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TV’) 입니다. 저마다의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준다는 점에서 국민청원과 한 변호사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무 자르듯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는 않지요. 국민청원과 한 변호사의 공통 무기는 ‘공분’ 입니다. 이슈가 공분을 만나면 여론재판 양상으로 흐릅니다. 이때부턴 논리와 법리가 끼어들 틈이 없지요. 국민청원과 한 변호사가 손보사들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건 이 때문입니다.
#열쇳말 1.공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모두가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3~4월. 난데 없이 두 곳의 손해보험사들이 대중의 관심을 끕니다. 한화손해보험은 부모 없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구상권 소송으로, DB손해보험은 공소시효가 완료됐는데도 10여년 전 사망한 아버지의 사고 처리 비용을 생활고에 찌든 부인과 세 자매에게 청구해 승소한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한화손보는 6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버지를 대신해 초등학생인 A군에게만 구상금 변제를 청구하면서 비난의 화살을 맞았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2014년 무면허·무보험 운전자였던 A군의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사망보험금 1억5,000만원이 발생했고 4:6의 비율로 A군과 A군 어머니에게 보험금이 지급됐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망 전 베트남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A군의 어머니는 연락이 닿지 않아 현재까지 사망보험금 9,000만원이 지급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A군의 아버지를 대신해 사고 피해자에게 손해 전부를 우선 배상한 한화손보는 교통사고 당시 상대 차량 동승자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쓴 돈 5,300만원 중 2,700만원을 A군에게만 구상권으로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A군에게 한화손보가 요구한 금액을 갚고 못 갚을 시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이행권고결정을 내렸습니다.
문제가 된 DB손보의 소송 역시 소송 상대방 중 1명이 미성년자라는 점, 게다가 사고 발생 이후 10년 이상이 흘러 소멸시효가 완성됐는데도 소송(1심은 2012년)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샀습니다. 문제가 된 교통사고는 지난 2000년에 발생했습니다. 무보험 운전자였던 A씨와 지인 3명이 교통사고로 전원 사망했는데 DB손보는 정부 위탁을 받아 동승자 유족들에게 1억8,000만원을 지급했습니다. DB손보는 어머니에게 6,000만원, 막 성인이 된 두 딸과 고등학생인 막내딸에게 각각 4,000만원씩 보험금 1억8,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변제하지 못할 경우 연 20%의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현재 유족이 갚아야 할 금액은 4억4,000만원까지 불어난 상태입니다. 유족들은 해당 사건이 소멸시효가 완료됐다는 주장만 재판부에 전달하면 됐지만 이를 모른 채 대응하지 않다가 수억원의 채무를 짊어지게 됐습니다.
#열쇳말 2.한문철TV
두 사건이 대중에 알려진 경로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습니다. 우선 교통사고 관련 재판이라면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한 변호사가 무려 65.5만명의 팔로워를 확보한 한문철TV에서 관련 재판의 결과를 소개합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격분합니다. 그 중 행동력 있는 누군가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게시합니다. 보험사의 추악한 행태를 만천하에 알려 불매운동을 유발하기 위한 겁니다.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더 많은 누리꾼이 청원 동의와 댓글로 세를 불립니다. 인플루언서의 위력은 상당했습니다. 한화는 결국 취임 한지 일주일만에 대표이사가 본인 명의 사과문을 올리며 소 취하 및 재발방지를 약속했고 DB는 해당 사건을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으로 넘겨 채권 결손처리 가능성을 타진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수 백 건의 소송을 진행하는 보험사들로선 모든 소송 건마다 소송 상대방의 사정을 면밀히 파악해 제소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두 사건 모두 소송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미성년자와 저소득층을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사기엔 충분했지요.
이미 두 곳의 보험사들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나니 이제 보험 업계도 한문철TV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습니다. 연간 제기하는 수 백 건의 소송 중 어떤 건이 또 한 차례 한 변호사의 눈길을 끌고 유튜브 방송을 거쳐 여론을 들끓게 할지 알 수 없어섭니다. 그렇다고 보험사들로선 소송을 그만할 수는 없습니다. 보험사 경영에서 채권 관리는 중요한 축을 차지합니다. 채권이란 돈을 받을 권리지요. 앞선 두 사례처럼 보험에 들지 않은 자동차 사고 가해자의 사고 처리 비용을 보험사가 대신 내주고 유가족에게 이를 변제하도록 할 권리, 보험사기범에게 지급한 보험금을 돌려받을 권리 등등 이 모든 것이 보험사가 관리해야 할 채권 목록입니다. 채권 관리에는 필연적으로 소송과 조정이 따릅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민사 조정이나 소송 제기 등의 절차를 밟게 됩니다. 보험사가 원고든, 피고든 소송 당사자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로펌들로선 보험사들이 주요 고객이자 자주 만나는 소송 상대방이기도 합니다.
#열쇳말 3.교통령
‘백대 빵! 당신의 과실은 0입니다. 맞서 싸우세요!’
교통사고 후 상대 차량과 과실비율로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은 말입니다. 한 변호사가 유튜브에서 자주 외치는 말이기도 하죠. 유튜브를 넘어 공중파까지 진출해 일명 ‘교통령’으로 불리는 한 변호사의 성공 루트를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20여년 전만 해도 시장 자체가 크지 않았던 교통사고 관련 소송으로 전문 분야를 개척한 한 변호사는 한우물만 파며 명실공히 교통사고 소송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보험사 자동차 보상 담당 직원 중 한 변호사와 크고 작은 다툼을 벌여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한 변호사를 바라보는 손보업계의 시선은 복잡미묘합니다. 자동차 사고 과실비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드높인 점에 대해선 그의 공로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자기부담금 환불 운동처럼 잘못된 법리로 대중을 선동해 보험사들을 악의 축으로 몰아버리는 사례가 잦아 골칫거리인 것도 사실입니다.
대중을 등에 업은 한 변호사의 영향력은 점점 커질 듯합니다. 자기부담금 환불 운동이 소송전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보험사들은 약관 손질 등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훗날 한 변호사가 유튜브 팔로워들로 백만대군을 이뤄 제도 변화를 이끌어낼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은영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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