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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돌·물·빛·바람...자연의 언어를 공간에 담다

■ 재일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의 건축세계

경북 경주시 경감로에 위치한 경주타워 전경. 준공 13년 만인 올해 초에 이타미 준이 원작 저작권자임을 알리는 현판이 제대로 설치됐다. /사진제공=문화엑스포재단




유동룡(이타미 준) 건축가 /제공=이타미준 문화재단


지난 2월 경북 경주시 천군동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서는 현판식이 진행됐다. 이곳의 상징인 경주타워의 디자인 원작자가 재일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임을 밝히는 현판이었다. 준공한 지 13년이 된 경주타워가 이제 와 디자인 원작자의 현판식을 하게 된 내력은 바로 준공 직후부터 이어진 디자인 도용 논란 때문이다. 발단은 주최 측이 공모전 당선작이 아닌 우수작이었던 이타미 준의 디자인을 가져다 쓴 것이었다. 이타미 준 측은 소송에 돌입했고 2012년 승소했다. 하지만 다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디자인의 원작자가 이타미 준임을 밝히는 표지석이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칠이 벗겨진 채로 방치된 탓이다. 유가족은 다시 소송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8년 만인 2월 이타미 준은 디자인 원작자로서의 명예를 되찾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 국적과 유동룡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고국에서는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태어난 나라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지만 그의 건축에는 한결같이 편안함과 온기가 스며 있다. 오늘 건축과 도시에서는 이타미 준의 창작이 꽃을 피운 제주도 작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주 서귀포 포도호텔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지붕과 지붕이 잇닿아 있는 모습이 마치 포도송이 같다고 해 포도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붕의 능선은 제주의 야트막한 오름이나 전통 민가를 연상시킨다. /사진제공=ⓒSato Shinichi




비오토피아에 위치한 두손미술관. 천장에 설치된 창 때문에 마치 감싸쥔 두 손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 /사진제공=ⓒSato Shinichi


■제주를 사랑한 건축가

일본서 자랐지만 평생 한국국적 유지

해마다 가족들과 의식 치르듯 제주행

=“제주도를 원체 사랑하셨어요. 아버지가 나고 자란 동네와 제주도의 풍경이 거기랑 비슷하거든요. 해마다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해수욕하는 게 하나의 의식이었어요. 아버지는 한가하게 앉아 책도 읽고 명상도 하는 시간을 꼭 가지셨죠.” (유이화 ITM 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

재일교포 2세인 이타미 준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과의 연을 소중히 여겼다. 일본에서도 유동룡이라는 한국 이름과 국적을 유지했고 틈만 나면 한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한국의 건축과 문화재에도 깊이 빠졌다. 또한 한국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일식 요릿집 인테리어든 시골 마을에 작은 주택을 짓는 일이든 한국에서 하는 프로젝트라면 무조건 수임했다. 그의 장녀인 유이화 ITM 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그런 아버지를 따라 통역과 스케줄 조정 등 현장 업무를 도맡았다.

한국 곳곳을 여행했지만 이타미 준이 가장 사랑한 곳은 단연 제주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제주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왔다. 재일교포 도시락 사업가 김홍주씨가 제주에 200만㎡(약 60만평)의 땅을 사들여 이곳에 골프장과 호텔·박물관 등을 짓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바로 1999년 개장한 제주 핀크스 골프장이다. 골프장과 연접한 약 72만㎡의 부지에 ‘비오토피아’라는 이름으로 타운하우스와 온천·박물관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을 조성했는데 이곳에 들어선 네 곳의 미술관을 이타미 준이 설계했다. 핀크스 골프장 부대시설인 피닉스멤버스골프클럽하우스와 포도호텔도 그의 작품이다. 특히 이곳에서 작업한 미술관은 2010년 권위 있는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그에게 안겨줬다. 수풍석미술관이 그곳이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에 위치한 수풍석미술관 가운데 수(水) 미술관. 천장에 뚫린 타원형의 공간을 통해 들어온 빛이 물에 반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사진제공=ⓒSato Shinichi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에 위치한 수풍석미술관 가운데 풍(風) 미술관. 나무 판자가 조금씩 휘어 있어 바람이 지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진제공=ⓒSato Shinichi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비오토피아에 위치한 수풍석미술관 가운데 석(石) 미술관. 단단한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한줄기 빛이 내부로 들어오게 설계했다. /사진제공=ⓒSato Shinichi


■자연을 주인공 삼은 수풍석미술관

물·바람·돌 테마로 한 세 채의 공간

구름 움직임·햇빛따라 풍경 달라져



제주도의 자연 그대로를 감상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수풍석미술관은 물과 바람·돌을 각각 주제로 한 총 세 채의 미술관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수 미술관은 타원형으로 도려낸 듯한 천장, 그리고 건물 중심부를 채우고 있는 물과 자갈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름의 움직임이나 햇빛이 물에 비쳐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만든다. 물가에는 돌 벤치가 마련돼 있다. 방문객이 그곳에 앉아 무심(無心)하기를 바라며 건축가가 놓은 것이다. 풍 미술관은 오두막을 연상하게 하는 외관을 갖고 있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나무판자가 조금씩 휘어 있어 바람이 통과할 때마다 소리가 난다. 수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는 잠시 앉아 명상에 빠질 수 있도록 돌 조각상을 뒀다. 끝으로 석 미술관은 철로 된 단단한 상자에 동그란 구멍을 하나 뚫은 것처럼 설계됐다. 구멍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끊임없이 이동하는 빛을 보며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비오토피아에는 수풍석박물관 외에도 두손미술관이 있다. 이 건물의 진가는 내부로 들어가야 느낄 수 있다. 천장과 벽에 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때문에 건물이 마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유 대표는 “수풍석미술관은 철저히 자연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며 “건축물은 자연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타미 준 사상의 정수가 응집된 곳”이라고 말했다.

핀크스에서 수풍석미술관 다음으로 눈여겨봐야 할 그의 작품은 두손미술관과 포도호텔이다. 두손미술관은 천장에 난 창문의 모양과 위치 때문에 건물에 들어가면 마치 기도하려고 모은 거대한 두 손안에 들어간 느낌을 준다. 포도호텔이라는 이름은 올록볼록한 지붕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마치 포도송이를 연상하게 해 지어진 이름이다. 이 지붕의 곡선은 제주의 산이나 오름의 능선도 떠올리게 한다.

유 대표는 “이타미 준 건축의 핵심 키워드는 풍경에 순응하는 건축”이라며 “그는 늘 토지가 가진 성격과 결을 거스르지 않고 토지에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맺는 열매로서의 건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방주교회 전경. 단층의 소박한 건물이지만 박공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물이 마치 물에 떠 있는 배를 연상시킨다. /사진제공=ⓒSato Shinichi


■건축·예술을 위한 집착

가장 많은 애정 쏟았던 방주교회

설계·소재 수없이 바꿔가며 고민

“아버지는 모든 작품을 자식에 비유하셨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집착과 애정이 투여된 것은 방주교회였어요. 방주교회 생각에 푹 빠져서 수도 없이, 툭하면 설계를 바꾸셨죠. 지붕의 형태는 어떻게 할지, 패턴은 어떻게 하고 소재는 뭘 쓸지 늘 고민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에너지로 너무나도 충만했죠. 그때가 이타미 준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이즈음 이타미 준은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60대가 되니 건축이 뭔지 알 것 같았고, 70대가 되니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생겼다고. 제주에서의 작품들에는 이타미 준만의 인장이 찍혀 있다. 그렇다면 이타미 준의 인장이란 무엇일까. 아마 이타미 준이 생전에 남긴 이 말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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