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인왕산에 비가 그쳐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의 산수화다. 그림이 그려진 1751년 절친인 사천 이병연이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점 때문에 학자들은 친구의 회복을 비는 그림으로 추정했다. 신간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의 저자는 이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으며 ‘정치적 해석’을 제시한다. 겸재는 김창흡과의 인연으로 노론계 강경파인 장동 김씨 집안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저자는 겸재가 여러 요직과 고위 관직을 거친 점을 들어 단순한 후원 화가 이상이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1751년은 영조가 돌도 지나지 않은 사도세자의 첫아들을 서둘러 세손으로 책봉한 해다. 노론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른 영조는 전염병으로 삶이 피폐해진 백성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10대의 어린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지만, 사도세자가 소론의 제안을 받아들여 ‘균역법’의 기초를 추진하면서 조정은 노론 강경파의 압박에 직면한다. 이에 영조가 때마침 태어난 세손을 왕위계승자로 공식화해 사도세자의 질주에 제동을 거니 노론계는 남몰래 반색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관련기사
‘인왕제색’을 다시 보자. 오른쪽에 기울어진 작은 집은 기강이 무너진 세태를 비꼰 듯하다. 어진 임금이라는 뜻의 인왕이 영조를 가리킨다면, 이제 왕께서 본연의 색을 되찾아 노론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보인다. 책은 기존 미술사학자들이조선 후기의 특징을 진경(眞景) 문화라 단정짓는 데 대해 진지한 문제를 제기한다. 3만5,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