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가 라이벌에서 미래 사업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13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삼성SDI 천안사업장 방문은 한국 재계 역사에 새로운 한페이지를 장식했다. 현대차그룹의 최고경영진이 삼성그룹 사업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수석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상의 이유로 공식 미팅을 가진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선대에도 두 그룹 간 최고경영진이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간 개별 만남은 지난 2001년 한 차례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 별세 때 재계 총수들이 도와준 데 대한 답례로 이 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삼성과 현대는 해방 후 70여년간 재계 1·2위를 다투는 라이벌이며 색깔이 다른 기업이다. 각 그룹의 창업주인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전혀 딴판인 경영 스타일을 보인다.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치밀하고 신중했던 반면 가난한 집안의 장남 출신인 정 명예회장은 ‘임자, 해봤어?’라는 어록이 나타내듯 과감하고 뚝심 있는 경영으로 각각 국내 최고의 그룹을 키워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 때문인지 두 창업주는 생전 왕래가 드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그룹의 경쟁은 2세 경영에서도 이어졌다. 양사의 현재 주력 사업은 전자와 자동차로 다르지만 한때 이 회장은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고, 현대 역시 전자 및 반도체 사업으로 삼성을 견제하기도 했다. 두 그룹은 기아자동차 인수, 삼성동 한전 부지 인수를 놓고도 자존심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주력 사업에서 경쟁을 벌이며 1990년대 즈음에는 두 그룹이 서로를 크게 견제하며 이 회장과 정 회장은 별도의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삼성과 현대의 주력 사업이 전자와 자동차로 재편되며 얼어붙었던 양사의 관계도 누그러졌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이번 공식 만남으로 양사 간 협력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간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용 배터리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공급받았는데 정 수석부회장의 삼성SDI 방문을 계기로 양사가 공급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와서다. 특히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향후 현대차가 주요 고객사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의 주력 분야인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이 미래차인 전동화차량에 다수 탑재돼서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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