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차가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 손을 맞잡자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096770)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동안 LG·SK 제품만 썼던 현대차·기아차가 삼성SDI(006400)의 배터리를 사용할 경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점유율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만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양사는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의 만남이 당장 사업적 협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선을 그었지만 배터리 업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전기차에 집중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서의 수주가 배터리 점유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의 1·4분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LG화학 27.1%, 삼성SDI 6.0%, SK이노베이션 4.5% 등이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회동은 생산시설 투자나 수주에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삼성SDI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전년 대비 108.5%의 높은 성장률로 삼성SDI를 바짝 추격 중이던 SK이노베이션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배터리 업계는 삼성SDI가 현대차·기아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의 배터리를 수주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1년까지 네 차례 나눠 발주될 물량 중 1차에 해당하는 약 50만대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냈다. 업계 관계자는 “4차에 걸친 발주량 중 삼성SDI가 일부 물량을 수주할 길이 열린 것”이라며 “최근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있어 물량도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관심을 보인 만큼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월 ‘CES 2020’에서 차세대 배터리로 개발 중인 리튬금속 배터리 기술을 선보였다. 밀도가 높아 한 번 충전에 700㎞ 이상의 주행거리를 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포함한 차세대 배터리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면서 “빠른 기술 확보를 위해 글로벌 컨소시엄도 구성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전체 시장이 급속히 커져 LG화학·SK이노베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2021년 458GWh, 2023년 916GWh로 늘어나 공급량(776GWh)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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