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일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156만개의 일자리를 신속하게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초래한 ‘고용 위기’를 그만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체 일자리 창출 규모는 이미 각종 회의체를 통해 발표한 내용을 합산한 것에 불과해 ‘재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아울러 이날 처음 공개된 세부사업들도 효과가 불분명한 단기·임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국민 세금을 동원한 ‘재정 일자리’로 땜질 처방만 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발열체크·농가일손 돕기…55만개 중 공공 부문 40만개=정부가 제시한 일자리 창출 목표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이미 책정된 예산을 활용한 공공 일자리 94만5,000만개 △공무원·공공기관 일자리 6만7,000개 △5차 비상경제회의(지난 4월22일)를 통해 발표한 직접 일자리 55만개 등이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3차 추가경정예산안으로 재원을 마련해 신규 창출하기로 한 55만개의 일자리다. 정부 구상에 따르면 이들 일자리는 공공 부문 40만개, 민간 부문 15만개로 나뉜다. 공공 부문 일자리는 다시 비대면·디지털 부문(10만개)과 저소득층·실직자 등을 위한 취약계층(40만개) 몫으로 구분된다.
주 15~40시간, 최대 6개월 근로조건의 비대면·디지털 부문은 △농업 분야 교육·홍보자료 제작 △의료기관 발열 체크, 환자 안내 등 방역 지원 △국내 대학·연구소 보유 데이터의 디지털 전환 등의 사업으로 구성됐다. 저소득층이나 실직자 등에 대한 우선선발 원칙이 적용되는 취약계층 일자리 사업은 △농·어가 일손돕기 △공원·체육시설 개선 △전통시장 유통 지원 등으로 이뤄졌다.
15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민간 부문은 청년층(만 15~34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정보기술(IT) 활용 직무와 단기 인턴 직무로 나뉜다. 관련 업무에 청년을 채용한 5인 이상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정부가 최대 6개월간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주 15~40시간, 3개월 이상 기간제 근로계약을 조건으로 하는 이들 사업의 직무는 △홈페이지 기획·관리 △기록물 전산화 △빅데이터 활용 △호텔·관광 분야 인턴 등이다.
문제는 공공·민간을 막론하고 이들 프로젝트가 3~6개월의 단기 사업에 그칠 뿐 아니라 발열 체크 및 환자 안내, 농어가 일손돕기, 기록물 전산화 등 상당수가 단순·노무 작업에 가까운 ‘질 낮은’ 일자리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들 사업만 갖고 총 5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 역시 과도하게 부풀려진 수요 예측에 기반한 목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한국의 경제구조는 해외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데 국제무역이나 물류 네트워크가 아직 작동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이든 고용이든 정부의 기대보다 훨씬 안 좋은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며 “영속성이 없는 ‘단기·세금 일자리’로 유례없는 위기를 극복하기는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3차 추경서 野 공세 가능성…“규제혁파로 일자리 정책 중심을 기업으로 옮겨야”=정부는 55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 3조5,000억원을 3차 추경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허술한 세부사업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면서 향후 국회 협상 과정에서 야당의 집중적인 공세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에 대해 경제 중대본 회의 후 브리핑에서 “민간 부문의 자생적 고용창출 여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공공 일자리 확대는 불가피할 뿐 아니라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며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을 위해서는 온라인 콘텐츠 기획 등 실질적으로 취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지털 일자리를 운영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공공 부문으로 치우친 일자리 프로젝트의 중심추를 기업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혁신 외에는 방도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일자리 대책은 민간이 80~90%를 책임지고 나머지를 정부가 분담하는 구조로 짜여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 아니냐”며 “정부가 말로만 규제 개선을 외치면서 실제로 기업들이 피부로 체감할 만한 조치를 내놓지 않으니 ‘리쇼어링(해외 기업의 국내 유턴)’이 부진하고 일자리 창출 여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