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박으로 화웨이로부터의 신규 수주를 전격 중단하며 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TSMC가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끊을 경우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 미칠 영향도 상당할 전망이다.
예상은 엇갈린다.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량 감소 전망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바일향 메모리 반도체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삼성전자만 놓고 볼 때 스마트폰 및 5G 통신 장비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어 반사이익도 기대된다. 다만 중국이 자국 파운드리인 SMIC 육성에 보다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돼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1위를 목표로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에 어느정도 차질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MIC는 전날 중국 정부 펀드로로부터 15억달러, 상하이집적회로기금 2기로부터 7억5,000만달러 등 총 22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SMIC가 지난 14일 1·4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기존 전망치 대비 11억달러가 늘어난 43억 달러를 올해 설비투자 용도로 집행하겠다고 밝힌 지 나흘만이다. 중국 정부 지원 덕분에 SMIC는 지난해 매출액(31억1,600만달러)을 훨씬 웃도는 금액을 설비투자로 집행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중국 정부의 SMIC 지원은 TSMC와 거래가 끊긴 화웨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SMIC는 현재 핵심인 14나노 공정을 올 연말까지 7나노로 업그레이드 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애플, 퀄컴 등이 올해 5나노 기반의 AP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돼 화웨이 AP의 경쟁력은 경쟁 업체 대비 몇 세대 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또한 미국 제재 때문에 화웨이 물량을 수주할 수 없는데다 퀄컴, 삼성전자 등의 AP 사용 또한 제한할 것으로 보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점유율은 보다 하락할 전망이다.
SMIC 기술력 업그레이드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5나노 이하 공정에서는 네덜란드 ASML이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이 필수인데 이 또한 미국 기술이 일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화웨이가 칭화유니그룹의 팹리스 자회사인 유니SOC에 기술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찾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유니SOC는 6나노급 AP 생산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일시적 매출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 1·4분기에 중국 시장에서만 전체 매출의 44% 가량인 3조1,70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화웨이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지난 2018년 2·4분기부터 지난해 4·4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으로 삼성전자의 주요 5대 매출처 중 하나였다. 다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글로벌 스마트폰 업계 2위인 화웨이의 점유율 하락으로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하는 한편 수익 개선도 노릴 수 있게 됐다. 5G 장비 분야에서도 수혜가 예상된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SMIC의 사세 확장이 부담이다. 중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하이엔드급을 제외한 여타 반도체 물량을 SMIC에 몰아 줄 경우 삼성전자 점유율 확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지난 연말 바이두의 AI칩 물량 수주 사실을 알렸지만 추후 중국 업체와의 거래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칼날이 언제 본인들을 향할 지 모른다는 점에서 오스틴 현지 파운드리 공장 증설 등의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보인다”며 “이재용 부회장은 전날 중국 시안 공장 방문 또한 미중 무역분쟁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서지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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