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웨어러블 심전도 기기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인정을 받았다. 원격의료 기기가 건강보험 대상이 된 첫 사례로 부정맥 등 심장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 처방이 가능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도입 목소리가 높아진 원격의료가 사실상 첫발을 뗀 셈이다.
휴이노는 19일 손목시계형 웨어러블 심전도 기기인 ‘메모워치’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요양급여 대상에 포함되는 행위 인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급여 등재로 의사들은 휴이노의 메모워치를 처방할 수 있게 됐다. 1억원이 넘는 홀터 심전도 기기가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상생활의 간헐적 심전도 감시’라는 코드로 처방을 내리면 병원에서 메모워치를 빌려주고 환자가 착용하는 방식이다. 건당 비용은 약 2만2,000원이며 환자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2,000~3,000원 정도다.
메모워치는 사용자가 시계처럼 착용해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다. 기존 심전도 검사인 홀터 검사는 환자가 장치 착용부터 검사 결과 확인까지 최소 4~5회나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이 기기는 사용자가 손목시계 모양의 의료기기를 착용하는 것으로 심전도 측정 및 분석, 의사의 진단이 가능하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는 불가능하다. 휴이노가 지난 2015년 이미 개발을 끝낸 메모워치를 시장에 내놓지 못했던 이유다.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과 동시에 규제 샌드박스 1호로도 선정됐지만 건보 적용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올 들어 코로나19로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자 보건복지부가 3월 메모워치에 대해 ‘규제 없음’을 결정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내원을 안내하기만 한다는 점에서 원격진료는 아니라는 기존과 다른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는 “메모워치가 새로운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대형병원 쏠림 같은) 의료업계의 우려와 달리 심전도 측정기가 없는 1차 병의원 중심으로 공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심장 이상신호 병원전송 가능”...30년 끈 의료법개정 물꼬 틀까
복지부 “내원권고 수준...본격 원격의료 아냐” 선 그었지만
코로나로 필요성 절감·국민만족도도 높아 구체화 가능성 커
“하느냐 마느냐 문제 이미 지나...어떻게 도입할지 논의해야”
대구에 거주하는 23세의 한 남성은 평소 가슴에서 짜릿짜릿한 통증을 느꼈다. 병원을 방문해 ‘홀터 검사’를 받았지만 하필 검사를 받는 24시간 동안에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검사의 정확성에 의심이 든 그는 휴이노의 ‘메모워치’를 착용하고 생활했다. 1주일 후 저녁 친구와 술을 마시던 그는 가슴에서 짜릿한 통증을 다시 느꼈고 손을 모아 심전도를 기록해 고대안암병원 의료진에게 전송했다. 손호성 고대안암병원 부원장은 데이터를 확인한 뒤 응급처치가 필요한 심실빈맥이라고 진단했고, 환자는 내원해 수술을 받았다. 손 부원장은 “데이터를 확인한 후 즉시 내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잘못했으면 심장마비까지 올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휴이노의 메모워치는 이같이 심장이 불편하지만 기존의 홀터 검사로 부정맥 확진 판정을 받지 못하던 이들을 위해 개발됐다. 홀터 검사는 병원을 방문해 기기를 부착한 채 24시간을 지내야 해 번거로울 뿐 아니라 검진율 자체도 높지 않았다. 이번 급여 등재로 의사들은 휴이노의 메모워치를 처방할 수 있게 됐다. 1억원이 넘는 홀터 심전도 기기가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상생활의 간헐적 심전도 감시’라는 코드로 처방을 내리면 병원에서 메모워치를 빌려주고 환자가 착용하는 방식이다. 건당 비용은 약 2만2,000원이며 환자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2,000~3,000원 정도다.
휴이노의 메모워치는 심전도 이상을 의심하는 환자가 처방 이후 손목에 기기를 착용하고 생활하다가 심장에 이상이 왔다고 느끼는 순간 두 손목을 모아 심전도를 측정하면 이 정보가 자동으로 의료진에게 전송되는 방식이다.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분석 프로그램이 심장박동의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0.9%인 부정맥 조기진단율을 11%까지 높였고, 이를 통해 연간 4,000억원에 달하는 의료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휴이노는 추정하고 있다.
메모워치의 급여 등재로 30년을 끌어온 원격의료의 본격 도입도 전환점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가능하지만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휴이노의 메모워치는 의사가 환자에게 ‘내원 권고’를 하는 수준인 만큼 ‘원격의료’는 아니라는 판단 아래 허용됐다. 이번 급여 등재로 원격진료가 본격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진료에서는 이미 26만건이 넘는 상담이 이뤄졌다.
국민들은 원격의료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은평성모병원이 지난 3월9일까지 전화진료를 받은 환자 906명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전체의 87%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일각에서는 진작 원격의료가 허용돼 혈압과 심전도·체온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가 보급됐더라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을 훨씬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병원에 가지 못하고 전화상담만 받으며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생활치료센터’를 도입해 겨우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었는데, 이 같은 사례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1993년 원격의료를 도입한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의료로 진료를 받는 환자 수가 170배 늘었다. 코로나19의 진앙인 중국의 경우 2014년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해 원격으로 진료를 받은 뒤 약품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로봇을 활용한 원격수술도 허가했으며 영국은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동네의원에도 원격의료를 권고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BIS월드에 따르면 미국의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지난해 24억달러(약 2조9,000억원)에서 오는 2022년까지 연 9.8%씩 성장해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는 모든 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원격의료”라며 “도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이미 지났고,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우려와 달리 현실은 전화상담 사례에서 보듯이 의원급 병원에서 원격의료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 업계의 반발과 이에 눈치를 보는 정부 당국과 정치권의 미적거림이 발목을 잡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18일 “현재 진행하는 전화상담 중단을 회원들에게 권고한다”며 “집회 등 더 강경한 대응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중대본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 확대를 논의한 바 없다”면서 “국회 입법이 필요한 만큼 의료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과 함께 충분히 논의하겠다”며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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