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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아시아나에 3조원 지원…왜 정부는 ‘항공산업 구하기’에 나섰을까?[영상]







지난달 정부는 위기에 빠진 대한항공을 구하기 위해 1조 2,000억 원, 아시아나 항공에 1조 7,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부가 지난달 항공사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예산을 합치면 총 3조 원인데요. 이번에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총 예산이 14조 3,000억 원 규모라고 하니까 한 산업을 살리기 위해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큰지 감이 잡히죠?



그런데 이렇게 ‘항공산업 구하기’에 몰두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뿐만은 아닙니다. 미국은 항공산업을 구하기 위해 74조원을 지원해주고, 유럽의 정부들은 심지어 항공사를 국유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코로나19로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모든 산업이 다 힘들 텐데 도대체 왜 각국의 정부들은 유독 항공사 구하기에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을까요?



코로나19가 퍼지면서 가장 먼저 닫힌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하늘 길입니다. 확진자와 접촉하는 것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이어지다 보니 하늘길을 다니며 국경을 넘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지난 몇 달은 항공사들에게 무덤 같은 달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확산하기 전에는 하루 평균 12만 건에 달하던 비행기 운항 횟수가 지난 3월 말 3만 7,000건까지 3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국적 항공사 여객기도 10대 중 8대가 멈춰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일주일에 900회까지 운행하던 미국 뉴욕, LA 노선도 50회까지 쪼그라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들은 매일같이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다시 예전 규모로 국가 간 이동이 가능해질지 아직 깜깜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비행기 노선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자 항공사들은 가장 먼저 인건비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대한항공은 6개월 간 전 직원 순환 유급 휴직을 시작했고, 아시아나는 전 직원 무급 휴직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렇게 항공사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인건비를 줄여도 매달 수천 억 원이나 되는 항공기 리스 비용이 고정적으로 든다는 점입니다. 대한항공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대한항공의 항공기 리스 비용은 매달 4,000억 원입니다. 평소에는 항공 운송 수익으로 충당해오던 비용이지만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막히다 보니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항공이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하더라도 수입이 전혀 없는 채로 오롯이 갖고 있던 현금만으로 리스 비용을 내면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3~4개월에 불과합니다. 지난 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현금 보유액은 1조 6,000억 원이었거든요. 이 때문에 대한항공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렇게 항공산업이 힘들다 보니 정부가 큰 돈을 지원해주기로 결심한 건데, 이걸 가지고 말이 많습니다. 우리의 피 같은 세금을 국적기를 지키겠다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쏟아 부을 수 있냐는 지적입니다. 그렇지만 정부의 결정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닌 게 단순히 국적기를 지킨다는 건 ‘우리나라 항공사’라서가 아니라 항공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활동에 불가결한 에너지를 공급하거나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지정하는데 항공산업이야 말로 이에 해당합니다. 관련 일자리가 83만여 개에 달하거든요. 또 하루 아침에 긴급 상황이 터져 모든 항공사의 비행기가 결항 되더라도 국적기가 있으면 사람과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발병하고 나서 해외에 있는 교민들을 수차례 실어 나른 우리나라 국적기의 활약상을 떠올리면 쉽죠.



그럼 이제 항공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됐을 텐데요.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돈을 붓더라도 무작정 들이 부을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이미 항공업에 580억 달러(74조원) 규모의 예산을 쏟아 부은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합니다. 우선 미국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에 전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오는 9월까지 직원을 해고하거나 급여를 삭감하면 안되고,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도 최소 2년간 금지됩니다. 또 과도한 경영진 비용 지출도 할 수 없죠. 정부가 빌려준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주식을 싼 값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도 정부에 주어집니다. 사실상 항공사의 지분을 요구한 셈입니다. 무조건 기업을 도와주겠다는 게 아니라 대량 실업을 방지하고, 지원한 돈의 일정 부분은 반드시 돌려받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정부는 국적항공사인 알리탈리아에 5억 유로를 지원하면서 완전 항공사를 완전 국유화하기로 했고, 프랑스는 에어 프랑스에 70억 유로를 지원하면서 탄소 배출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 정부가 대한항공에 내건 조건을 한번 살펴볼까요? 우리 정부가 대한항공에 지원하는 돈은 기업의 이익을 정부와 다시 공유한다는 조건 하에 빌려주는 돈입니다. 대한항공이 받을 1조 2,000 억 원 중 3,000억 원은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채권입니다. 대한항공이 정상화되고 난 후에 해당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주식의 시세차익이나 배당 이익 등을 정부가 취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지원에 대한 전제 조건도 붙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검토 중이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 6개월 간 일정 비율 이상으로 고용 총량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 정부의 지원금을 다 갚을 때까지 임직원의 고액 연봉을 제한하고,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정부가 나서 지원해주지만, 그 지원금의 실질적인 주인인 납세자들에게 적절한 보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겠죠.



이전처럼 국민들이 메이드인 코리아라면 조건을 불문하고 지원해주는 데 동의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정부에서도 보다 효과적인 지원책을 고민하고 이를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과정도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앞으로 천문학적인 항공산업 지원금의 구체적인 사용 방안과 조건들이 논의될 텐데, 어려운 시기 정부가 기간산업도 돕고, 국민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정현정기자 jnghnji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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