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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80년대 반지하의 기억, 현대인 삶 속에 녹아들다

■서울 광진구 구의살롱

서울 광진구 구의동 구의살롱은 지난 1987년에 준공된 옛 건물이다. 지난해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업무 및 주거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의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다./사진제공=에스티피엠제이






‘초등학교(옛 국민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던 지난 1980년대만 해도 주택을 지을 때는 적의 공습에 대비해 지하에 방공호를 파야 했다. 처음부터 거주 목적이 아니었으니 웃돈을 들여 굳이 깊게 파거나 층고를 높게 할 필요는 없었다. 지하는 지하인데 도로 높이보다 살짝만 낮은 반지하다.

이후 시대가 흐르면서 집주인들은 방공호였던 반 지하층을 개조해 임대를 주기 시작했다. 한 집이라도 더 세를 놓기 위해 가벽을 세워 공간을 잘게 쪼갰다. 문제가 되는 건 화장실이었다. 이미 매설된 정화조보다 화장실이 낮으면 오물이 역류할 수 있어 화장실만 높이를 높였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 지하층에 사는 주인공 가족이 휴대폰 신호를 잡기 위해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간 곳이 화장실 변기 위인 것도 이 때문이다. 도로보다 조금 낮은 반 지하층, 도로보다 살짝 높은 1층, 그 위에 2층이 올라가 있는 주택은 1980년대 지어진 주택의 건축적 특징이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구의살롱’은 1980년대의 기억을 담고 있다. 옛 반지하의 추억(?)을 간직한 주택을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주거·업무시설로 리모델링한 케이스다.

구의살롱 외관 난간의 스테인리스 마감. 외관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주변 주택과 차별화하기 위한 장치다./사진제공=에스티피엠제이


■주거·업무시설로 변신한 구옥

무심한듯 비우고 방치한 1층 공간

옛 시절의 흔적 고스란히 담겨있어

구의살롱은 1987년에 준공된 건물이다. 주택이 들어선 구의동 일대는 지금도 비슷한 시기에 지은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적벽돌에다 지붕 층의 처마구조, 기와,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과 난간, 여기에 집집마다 약속한 듯 심어놓은 감나무와 목련은 오래돼 오히려 정겨운 골목의 풍경을 만든다. 지난해 리모델링을 통해 새 옷을 입은 구의살롱은 분명 새집인데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리모델링 설계를 맡은 이승택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구의살롱의 외부공간과 마감은 구의동의 토속적인 문맥에 맞도록 기존 상태로 최대한 보존했다”며 “구의살롱이 1980년대 건물 사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갖는 풍경을 만들어내기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구의살롱의 외부는 골목 코너를 돌아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쉽게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원형이 보존돼 있다. 눈에 띄는 장식은 계단 등 난간 부분에 스테인리스 마감재를 두른 정도뿐이다. 입구 옆의 감나무도 그대로다. 구의살롱의 특별함은 외관보다는 오히려 내부에 있다.

최근 리모델링한 건물이지만 주변의 온전한 1980년대 주택보다 옛 시절의 기억을 더욱 절묘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30년 된 주택을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요구에 맞출 때 어떤 부분을 남기고 어떤 부분을 바꿀 것인가. 구의살롱에는 이 같은 건축가의 성찰이 한번 녹아 들어 있다. 새롭게 짓기 위해 해체 과정을 거쳐야 했고 이때 드러난 1980년대 건물의 속살은 오히려 새로운 건축 작업이 마무리된 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1층 내부 살롱 메인 창 옆의 벽면은 세 가지 마감이 혼재하고 있다. 적벽돌이 있는 부분은 원래 외벽이었던 곳으로 과거 확장의 흔적이다./사진제공=에스티피엠제이




1층 살롱의 벽면과 천장. 준공 당시 마감의 흔적이 다양하게 남았고 지난해 내력벽을 철거하면서 보강한 흰색 스틸빔도 고스란히 노출했다. 지난 1987년부터 2019년까지 건축물의 역사가 공존한다./사진=김흥록기자


이 소장의 말을 빌려보자. 그는 1층의 내부공간을 만들 때 내장재를 모두 뜯어낸 뒤 벽지나 페인트 등 아무런 내장을 새로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법을 택했다. 1층 공간의 벽면에는 최초 건물이 지어질 때 벽돌로 마무리했던 부분, 시멘트 도장한 부분 등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런 방치는 의도하지 않게 집의 역사도 담아냈다.

그는 “벽지를 뜯어내다 보니 1층의 메인 창문 옆쪽 벽면에 마감이 세 가지나 있는 거예요. 가만히 보니 원래 창문이 있던 자리를 베란다 확장하듯 넓혀 창문을 뒤로 물린 자리라는 걸 알았죠. 그 바람에 원래는 외벽이었던 벽면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한 벽에 여러 개의 마감이 있게 된 것이죠.” 그는 이 역시 남겨야 할 흔적으로 보고 그대로 보존했다.

여기에 1층 곳곳을 막고 있던 벽면도 상당 부분 비워냈다. 내력벽을 철거하는 대신 내부구조를 받치기 위해 철제 빔을 설치했는데 철제 빔마저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채 내버려뒀다. 이렇게 구의살롱 1층 공간에는 1980년 첫 준공 당시의 흔적과 전 집주인의 확장공사 흔적, 이번 리모델링의 흔적이 공존하게 됐다. 현재 1층 공간은 특정 용도가 없다. 방문객이 오면 차를 마시거나 필요할 때 회의를 하는 등 평소에는 비워두는 곳이다. 일종의 살롱 같은 개념인데 ‘구의살롱’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이 건축물의 시그니처 공간이다.

반 지하층은 현재 업무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제공=에스티피엠제이


■사무실로 활용한 반 지하층

미로같던 방이 널찍한 업무공간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춘 집합적 가치 반영

1층이 비워둔 공간이라면 반 지하층은 사람들로 채워진 곳이다. 현재 사무실로 쓰인다. 애초 1층과 반지하는 내부에서는 분리된 공간이었지만 사무실로 쓰기 위해 곧장 연결되는 계단 통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반 지하층에 미로처럼 막아놓았던 가벽을 대부분 헐고 널찍한 업무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면에는 한때 문이었던 곳이 창문으로 바뀌거나 아예 막아놓은 흔적이 있다. 이 소장은 “과거 세를 놓기 위해서는 임대단위로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야 했고 각 세대도 방과 다른 공간으로 나눠야 했다”며 “이에 반 지하층에는 무수한 벽과 외부로 출입하는 문들이 있었는데, 이를 없애고 메우고 바꾸며 업무를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에 레트로 트렌드를 따라 멋을 낸듯한 내부공간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그는 이에 대해 “소비를 위한 레트로와 구의살롱이 구분되는 것은 그 시대 상황과 구성원들이 갖고 있던 집합적 가치를 담아내고 보여줄 수 있느냐의 차이”라며 “모든 걸 남기거나 일부러 과거를 재현하는 것은 건축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봤다”고 했다. 거의 손대지 않은 듯한 이 건물이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0년 뒤 다시 이 건물을 바꾼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 소장도 동의했다. 그는 “다시 한번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그때는 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더하게 될지, 30년 뒤의 생활방식에서 이 건물은 어떻게 비춰질지 저부터 궁금하다”고 말했다. 물론 시간이 더 흐른다면 건물 자체의 수명이 다할 수 있다. 이 소장은 그런 경우라면 미련없이 허무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때로는 무언가를 남기기보다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 미덕이다. 그렇게 구의살롱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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