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강제징용 근로자와 위안부 피해자들의 유가족 단체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이 “피해자 보상을 방해하고 국민을 속이는 정의연은 당장 해체해야 한다”며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지난 1993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발표 전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한국인 피해자들의 증언 청취를 방해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양순임(사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20일 서울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1993년 고노 담화를 준비하던 일본 측 조사단이 한국인 피해자들의 증언 청취가 잘되지 않는다고 해 우리 외교부에 확인해보니 ‘관계기관에서 반대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당시 관계기관이면 정대협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대협이 ‘일본 조사단의 증언 청취에 응하는 것은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취지로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1993년 위안부 피해자 16명에게 강제동원 당시의 상황을 청취한 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조사단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려고 했는데 당시 정대협 측이 이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양 회장은 “유족회는 피해자들이 고령이라 점점 돌아가시고 있어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며 “그런데 정대협이 우리를 향해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끌고 간다’고 비판해 어이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양 회장은 고노 담화를 계기로 1995년 만들어진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서도 “정대협이 기금 수령을 매국노 행위처럼 얘기했다”며 “(정대협의 후신인) 정의연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을 우선시하는 정대협의 협상 방식 탓에 피해자들이 제때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양 회장의 비판의식은 위안부 피해자 고(故) 석복순 할머니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4년 발표된 이화여대 대학원의 박사논문에 인용된 석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한 정대협 인사가 ‘모금을 받지 말라, 그것 받으면 더러운 돈이다. 화냥년이다’는 폭언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민간 차원에서 기금을 모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자 1995년 발족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둘러싸고 국내 시민사회에서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모델’이라며 반대 여론이 있었고 결국 2007년 해산됐다.
양 회장의 주장에 대해 정의연 측은 “1993년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할 만한 당사자들이 돌아가시거나 연로해 객관적 상황은 알기 힘들다”면서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서로 입장이 다를 것”이라고 해명했다. 피해자들 내부에서도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어 정의연 관계자는 “정의연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 상태에서 책임 이행을 해야지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태평양전쟁을 전후해 군인, 군속, 노무자, 여자근로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끌려간 한국인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이 모여 1973년 만든 단체다. 유족회는 2014년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파문이 일던 당시 1993년 일본 정부 대표단이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직접 듣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21년 만에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양 회장은 위안부 문제를 처음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와 함께 1991년 도쿄법원에서 피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오랜 기간 피해자 보상에 전념해온 인물이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를 최초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그의 사위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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