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에도 28일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미중 간 격렬한 공방전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짙어졌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날 홍콩 보안법이 홍콩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압력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리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홍콩 보안법으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포기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에 “일국양제는 국가의 기본정책으로 중앙정부는 줄곧 홍콩인의 홍콩 통치, 고도자치를 강조해왔다”며 “전인대가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킨 것은 일국양제의 안정을 확보하고 홍콩의 장기번영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리 총리는 미중관계 전망에 대해 “‘신냉전’이라는 말도 있는데 중국과 미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어느 쪽에도 좋지 않으며 세계에도 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좀 더 노골적인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이날 국제적인 논란에 대해 “홍콩 보안법을 추진했다는 것은 미국의 어떤 반응에도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 등 보복공세에 대해 무역합의 파기, 미국 기업 제재, 위안화 평가절하, 미국 국채 매각 등의 맞불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홍콩 보안법 이슈가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 등 첨단기술 시장 패권다툼과 맞물리면서 성장률 둔화라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중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고무도장’ ‘거수기’로 불리는 전인대는 이날 일주일간의 올해 회기를 폐막하며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홍콩 보안법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구를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는 그동안 홍콩 민주화를 요구해온 범민주 진영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이날 ‘국가(國歌)법’을 심의하던 홍콩 입법회(국회)에서는 한 야당의원이 “법치는 끝났다”며 썩은 화초를 던져 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 대다수는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24일 1만명에 이어 27일에는 수천명만 시위에 참가했을 뿐이다. 보안법이 통과된 28일에도 수백명의 시위대가 도심에 모였지만 강도는 확연히 약해졌다. 홍콩 언론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으로 홍콩 시민들이 소극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의 반발은 점차 강해졌다. 지난해 송환법 사태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초강공 모드로 돌아섰다. 코로나19 부실대응 책임론 탈피 및 오는 11월 재선 승리를 기대하며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7일 지금까지 미뤄온 홍콩의 자치 수준에 대한 판단을 내린 뒤 의회에 보고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후속조치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해 중국 본토에서 오는 것과 같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비자 발급 혜택을 없앨 가능성이 있다.
다만 모든 혜택을 한번에 없애기보다 부분적·단계적으로 철회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부분제재로는 미국이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을 해지하거나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가 거론된다. NYT는 “국무부의 발표는 트럼프 정부가 홍콩과의 특별관계 일부 또는 전부를 끝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도 불구하고 홍콩 보안법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 생존과 권력 장악을 위해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희생해왔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뉴욕=김영필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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