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와 기관투자가가 참여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대형 호텔 리조트 개발 사업이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공사가 지연돼 투자금 회수에 상당한 차질도 우려된다. 국내 금융사들은 수익률도 높이고 채권·주식에 집중된 투자자산을 분산하기 위해 해외호텔과 리조트 등 자산에 상당 규모의 투자를 해왔는데, 자칫 대체투자의 부실화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006800)·NH투자증권(005940)·하나금융투자를 비롯해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참여한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The Drew Las vegas)’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가 지난 8일 원금·이자의 지급을 멈췄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원금 및 이자가 미지급되면서 금융 주관사 등은 지급유예 및 만기연장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진 것이다.
총 3조원 규모의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 사업에는 미래·NH·하금투 등이 국내외에서 6,000억원을 조달해 투자했다. 절반은 해외 기관이 선순위로, 나머지는 국내 기관이 중순위(메자닌)와 후순위로 투자했다. 투자에 참여한 국내 기관 중에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및 강원랜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조달을 주도한 2곳의 증권사도 각각 100억~200억원씩 자체 자금을 통해 에퀴티를 샀다. 다만 해당 건에 투자한 한 업체 관계자는 “최근 평가사에 의뢰해 확인한 호텔의 가치는 2조2,000억원 규모로 LTV(담보대출비율)가 27% 수준이어서 여력은 충분하다”며 “당장 손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는 지상 68층 건물과 총 3,780실의 5성급 호텔, 카지노와 컨벤션·극장 등이 들어서는 대규모 사업이다. 연면적(80만3,146㎡)은 63빌딩의 7배다.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와 연결돼 연평균 660만명의 방문도 기대했다. 2007년부터 개발이 시작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단됐다. 그러다가 2017년 미국 대형 부동산 투자회사 위트코프그룹이 인수하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올해 1월에는 자금 조달까지 끝마쳤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프로젝트의 차질은 불가피하고 결국 투자금 회수를 위한 복잡한 싸움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투자자들이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미국의 호텔·리조트에 투자한 규모가 제법 크다는 점이다. 미래에셋이 안방보험으로부터 사겠다고 계약한 미국의 15개 호텔을 제외하고도 국내 기관들이 지난 3~4년 동안 투자한 규모가 1조원이 넘는다. LA웨스트할리우드 에디션 호텔 앤 레지던스(2,200억원), 월도프 아스토리아 보카라톤 리조트(1,400억원) 등이 대표적.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초대형 IB 출범 뒤 유동성이 넘치자 눈을 미국 등 해외 대체투자로 돌렸다”면서 “고수익을 노리며 담보력이 약한 중순위 메자닌도 담았다”고 말했다. 국내의 한 기관 관계자는 “투자했던 미국 호텔 자산 대부분이 투자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며 “호텔은 업무용 빌딩보다 수익 변동성이 심해 직격탄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까지 지급유예는 선순위 투자자에 국한하고 있다. 선순위는 미국 은행들이 투자했다. 하지만 선순위 투자자도 버티지 못하고 자산을 매각하면 후폭풍은 담보력이 약한 중·후순위 투자자들이 맞는다. 원금회수도 불가능할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코로나19로 호텔 자산의 적정 가치가 최대 40%까지 낮게 평가된 사례도 있었다”며 “자산을 매각해도 제값을 못 받으면 중·후순위 투자자들은 원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윤희·강도원기자 choy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