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국회의원을 대체할 수 없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7년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했던 말이다. 함께 출연한 다른 의원들도 AI 국회를 먼 미래의 일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17년 뉴질랜드에서는 정치AI ‘샘’이, 2018년 일본 한 시장선거에는 AI에 전권을 넘긴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가 등장했다. AI의 대가 벤 거츨은 정치AI ‘로바마’를 오는 2025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AI가 정치적 결정의 최적화를 내세우며 국회의원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제20대 국회에 정치AI가 도입됐다면 가장 먼저 의원실을 빼앗겼을 유력 후보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다. ‘국민의 대표’로서 미래 먹거리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는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 지난 과방위에서 발의된 법률안 1,043개 중 334개만 문턱을 넘었다. 상임위 중 최하위권이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도 지지부진하다가 올해 초 처리됐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공인인증서 폐지를 다룬 전자서명법 개정안은 겨우 막차를 탔다. 고백도 이어졌다. 지난 5월 과방위의 과학기술원자력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손금주 전 민주당 의원은 “적어도 인권적인 측면이 아닌 부분에서는 좀 더 우리가 속도를 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에 대해 저 스스로 많이 자책했다”고 밝혔다.
정치AI가 20일 본회의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처리 과정을 지켜봤다면 AI의 국회 입성이 머지않았다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n번방과 관련해서는 우선 법을 빨리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과방위 소속 변재일 민주당 의원의 말에 문제점은 온전히 담겨 있다. ‘사적 검열’과 텔레그램을 제재하지 못해서 ‘풍선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충분한 숙의 없이 처리했다. 국회법상 입법예고 기간인 10일도 엄수하지 않는 등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과방위 소속 위원 20명 중 13명은 제21대 국회로 돌아오지 못했다. 국민은 알고 있다. 이번에도 ‘식물 과방위’가 반복된다면 국민은 차라리 ‘AI국회’를 택할지도 모른다. 부디 ‘일하는 국회’라는 상식을 여당 1호 법안으로 처리해야 하는 시작부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새로운 의원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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