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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이머는 '외딴 섬'? 스팀 규제 논란의 진실은[오지현의 하드캐리]





“스팀이 심상치 않습니다. 조만간 한국 지역에서 많은 게임이 내려가거나 ‘지역락(지역 잠금)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해외 게임의 국내 심의를 돕고 있는 임바다 바다게임즈 대표가 지난 2일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이 글이 일파만파 확산되며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스팀 게임을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습니다. ‘한국 스팀에서 판매 제외되는 게임 25종’이라는 리스트가 인터넷상에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과도한 게임 규제와 게임 탄압을 멈춰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4만5,000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네요. 정말 그럴까요?



인터넷에서 확산된 ‘한국 스팀에서 판매 제외되는 게임 25종’ 리스트에는 ‘림월드’, ‘스타듀밸리’ 등 인기 게임이 포함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밸브 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스팀(Steam)’은 현재 3만7,000개가 넘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입니다. 지난해 월 활성 사용자 수는 9,000만명, 가입 계정 수는 10억개를 넘겼죠. ‘언더테일’, ‘스타듀 밸리’, ‘돈 스타브’ 등 인기 인디게임들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한 등용문이자 게이머들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이런 스팀에 올라온 게임들을 못하게 된다니, “또 한국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문제는 게임물 등급분류입니다.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외 없이 등급분류를 받아야 합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등 5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게임에 전체 이용가, 12세 이용가, 15세 이용가, 청소년 이용불가 같은 등급을 매깁니다.

플랫폼, 이용형태, 장르, 한글화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정한 심의수수료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포커 대전을 하는 비한글 PC게임 심의를 신청한다고 가정하면 수수료 324만원이 든다는 계산입니다.

스팀에서 유통된 인디게임 ‘언더테일’의 한 장면


전 세계 소규모 인디게임이 대거 업로드되는 스팀 특성상, 많은 게임들이 한국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서비스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배틀그라운드’ 같은 국내 게임이거나 EA, SEGA처럼 국내 사업이 활발한 경우가 아니라면요.

실제로 스팀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인디게임 순위(6월5일 기준)를 살펴보면 상위 10개 중 5개가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하우스 플리퍼(4위)’, ‘오버쿡트!2(7위)’, ‘아크(8위)’, ‘스타듀 밸리(9위)’, ‘PC 빌딩 시뮬레이터(10위)’가 모두 한국 등급분류를 거치지 않은 채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한글화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에서 다운로드와 플레이가 일어나면 국내 소비자들에게 등급 정보를 알려줘야 할 필요가 발생합니다. 어린이, 청소년 이용자들이 부적절한 콘텐츠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고요. 엄연히 현행법 위반이긴 한 거죠.





게임위 측은 스팀 게임이나 서비스가 차단된다는 건 지나친 억측이라고 단언합니다. 밸브 코퍼레이션 측에 등급분류 신청·심의과정이 개선됐다고 안내한 것뿐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기존에 해외 게임사들도 국내 사업자로 등록해야 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불편함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내용입니다. 게임위 영문 홈페이지를 개설해 직접 등급분류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네요.

게임위 관계자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국내 법인이나 지사가 없는 해외 게임사들이 등급분류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번부터 신청을 받게 돼 스팀을 포함한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안내를 한 것이 확대해석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스팀 측 역시 게임이 합법적으로 유통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게임사들에 안내하겠다’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스팀 게임이 내려가거나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게임위 관계자는 “그런 부분은 전혀 논의된 바 없다”며 “위원회가 규제를 강화하려고 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해외 게임사들이 등급분류를 거쳐 게임을 유통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입니다.

인디 게임사 티모소프트가 지난 2016년 출시한 게임 ‘원데이: 더 선 디스어피어드(One Day: The Sun Disappeared)’는 게임 내 NPC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한글화를 우회 지원했다.


하지만 게임위의 의도와 달리 현장에서 등급분류가 일종의 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비한글화 게임이라고 해서 등급분류를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한글화를 공식 지원하면 한국 유통을 목적을 한다는 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때문에 해외 게임사들이 일부러 한글화 지원을 피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디 게임사 티모소프트는 게임 ‘원데이: 더 선 디스어피어드(One Day: The Sun Disappeared)’를 스팀에 업로드하면서 심의를 피하기 위해 다소 ‘신박한’ 꼼수를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게임 내 NPC에게 다가가 “두 유 노우 김치?”라고 물으면 모든 언어를 한글로 보이게 만드는 ‘저주’를 걸게 설정한 겁니다. 한글화를 정식 지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가려 한 거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글화 지원 게임이 줄어들면 한국 이용자들의 불편은 커질 수밖에 없겠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이머들이 직접 ‘한패(한글 패치)’를 만들어 적용하는 건 예사입니다. 한글화를 지원하면 ‘갓글화(갓+한글화)’ 게임이라며 찬양하는 풍조도 생겼습니다.

/이미지투데이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게임위가 스팀 게임을 ‘셧다운’하거나 등급분류 규제가 강화된 것은 아니다. 2.스팀 게임 상당수가 현행법 위반인 상태로 유통돼온 것은 맞고, 이로 인해 한글화 지원이 원활하지 않았던 게이머 불편이 존재했다. 3.장기적으로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가 사업환경을 악화시켜 인디게임 개발·유통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 유통 활성화를 위해 플랫폼별 등급 분류를 콘텐츠별로 개선해 중복 등급분류를 방지하고, 민간 자율 등급 분류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게임강국’을 표방하는 한국이 더 이상은 글로벌 마켓의 ‘외딴 섬’이 되지 않도록 절충안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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