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이야기입니다. 2017년 처음으로 1인당 GNI 3만달러를 넘기며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고 자축한지 3년 만에 2만달러대로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3만달러 선이 깨지지 않더라도 1인당 GNI 후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1인당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이는 임금·이자·배당 등 모든 소득을 합친 뒤 인구로 나눈 통계입니다. 국내총생산(GDP)이 국가 경제 규모를 보여준다면 GNI는 국민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됩니다. 특히 1인당 GNI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 지표로 활용됩니다. 선진국 수준의 경제활동을 보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은 2006년 1인당 GNI 2만달러에 진입한지 11년 만인 2017년 3만달러에 들어섰습니다. 당초 2018년에 처음으로 3만달러를 넘긴 것으로 봤지만, 국민계정 개편 과정에서 2017년으로 1년 앞당겨졌습니다. 인구 5,000만 이상인 국가 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3050클럽에 가입한 것은 한국이 7번째입니다. 일본(1992년), 독일(1995년), 미국(1997년), 영국(2002년), 이탈리아(2004년), 프랑스(2004년) 등 대부분 선진국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한국의 3만달러 달성은 다른 나라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가는 길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3만달러 달성 기간은 일본·독일이 5년으로 가장 짧았고, 미국은 9년이 걸렸습니다. 영국은 11년, 프랑스·이탈리아는 14년이 소요됐습니다. 평균은 9.7년으로 우리나라(11년)보다 조금 짧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힘들게 달성한 3만달러를 쉽게 내줄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달러화 기준 1인당 GNI는 3만2,115만달러로 전년보다 4.3% 줄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0.4%) 이후 최대 감소폭입니다. 실질성장률과 전반적인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 등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결과입니다.
지난해는 별다른 경제 충격도 없었는데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안까지 편성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입니다. 특히 1인당 GNI에 영향을 주는 실질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환율, 인구증가율 등 모든 지표가 코로나19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역성장 전망까지 나옵니다. 한은은 올해 GDP 성장률이 -0.2%로 1999년 이후 22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 -1.8%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습니다. 국제통화기금도 한국 성장률을 -1.2%로 예상했습니다.
물가도 불리합니다. 명목 GDP에 영향을 주는 GDP디플레이터는 올해 1·4분기 -0.6%(전년 동기 대비)로 5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올해도 지난해 GDP디플레이터 -0.9%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환율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원·달러환율 상승은 달러환산 국민소득을 줄이는 작용을 합니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0.2%이고 연간 GDP디플레이터를 -0.8% 정도로 추정했을 때 명목 GDP 성장률이 -1%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6월 이후 원·달러환율이 1250~1260원 수준으로 지속될 경우 3만달러가 붕괴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지난 5일 마감가 기준으로 원·달러환율은 1,207.50입니다.
이미 올해 1·4분기 GNI는 전년 대비 2.0% 줄어든 상태입니다. 관건은 코로나19 전개 상황이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입니다. 신석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될 경우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 때문에 기축통화 가치가 높아지고 원화 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며 “그럴 경우 GDP 하락, 물가 하락, 원·달러 환율 상승 등 모든 지표가 GNI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