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최초로 금융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의 빗장을 열어젖히며 일찌감치 핀테크 생태계 선점에 나선 NH농협은행이 독자적인 오픈 API 인프라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에 착수했다. 누구나 무료로 금융서비스를 고안해 시험까지 해볼 수 있는 개발자센터를 대폭 강화하고 새로운 핀테크 수요에 발맞춰 이제까지 없었던 API를 은행이 맞춤형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도 확대한다. 이를 통해 지난 4년간 5조원으로 늘어난 API 기반 거래액을 향후 3년 내 20조원까지 늘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7일 은행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핀테크기업·스타트업의 오픈 API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 최근 ‘오픈 API 인프라 강화 전략’을 마련하고 지난달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API는 출금·입금·조회처럼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의 명령어 묶음을 뜻하는 용어다. ‘오픈 API’는 말 그대로 이 API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은행이 아닌 제3자에도 개방(오픈)하는 것을 말한다.
API를 개방하면 은행만이 갖고 있던 금융 기능과 데이터를 토스·카카오페이 같은 핀테크기업도 이전보다 훨씬 손쉽게 가져다 쓸 수 있게 된다. 지금의 금융권 공동 오픈뱅킹이 가능한 것도 이런 원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금융서비스의 선택권이 넓어지지만 은행으로서는 가장 큰 자산을 새 경쟁자에게 손수 넘겨주는 셈이어서 이전까지 금기시됐다. 이 흐름을 처음으로 바꿔놓은 게 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은 정부가 금융권 API 개방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기 이전인 지난 2015년 가장 먼저 빗장을 풀고 오픈 API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앞서 혁신하지 않으면 고객과의 접점을 잃고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당시 스마트금융부장으로서 이 작업을 실무선에서 지휘한 주인공이 손병환 농협은행장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API개발자센터’의 기능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이 센터에서는 대형 핀테크 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스타트업이나 일반인도 자유롭게 들어와 금융서비스를 개발하고 실제 작동 여부를 테스트할 수 있다. 지금은 32개의 API에 대해 기능 테스트를 제공하는데 앞으로 환전, 예치금 관리, 신용카드 결제 등도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다른 시중은행도 유사한 개발자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기능의 범위와 정도는 농협은행과 격차가 크다. 타 은행의 경우 비싼 전용선을 설치해야만 API를 이용할 수 있는 반면 농협은행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인터넷망으로도 API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전용선에 버금가는 보안성을 확보하기 위해 3년에 걸쳐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현재 3~4개월 걸리는 정보보호절차도 더 간소화해 소요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스포크’식 맞춤형 API 서비스도 확대한다. 현재 농협은행은 단순 거래를 위한 API 개방에 그치지 않고 핀테크 기업의 요구에 맞춰 차별화된 API를 개발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개인간금융(P2P) 기업인 8퍼센트·미드레이트 등과 함께 P2P자금관리 API를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현재 토스와도 환전·대출 서비스 등과 관련한 맞춤형 API 개발을 진행 중”이라며 “핀테크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더 새롭고 안정적인 금융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API를 통한 거래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농협은행 독자 API를 통한 누적 거래액은 2016~2019년 5조원이었는데 3년 내 20조원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현재 63곳인 거래 기업도 200곳으로 확대한다. 강태영 농협은행 디지털전략부장은 “조회·이체 등 특정 거래 중심인 공동 API에 비하면 독자적인 오픈 API는 다양한 파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다양한 핀테크 이용자들이 농협은행 계좌를 거쳐 가도록 록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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