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을 놓고 미중 갈등이 격화한 와중에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한중일 3국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동 디지털화폐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9일 보도했다. 국경을 넘는 결제망을 구축해 동아시아의 역내무역을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다. 위안화를 국제화하겠다는 노림수도 담긴 만큼 디지털화폐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전쟁이 더욱 격화하는 모습이다.
━ 광역 디지털화폐 구상 중국 내 진지하게 논의 |
이 제안은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업체 씨트립의 공동창업자인 선난펑이 주도했다. 홍콩 정계의 거물인 헨리 탕잉옌도 제안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는 “정협은 각계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중요한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라며 “(광역 디지털화폐) 구상이 중국 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미 선전을 비롯한 5개 지역에서 디지털화폐 실증실험을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에서 디지털화폐 발행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역 디지털화폐는 각국의 경제규모에 맞춰 구성하는 안이 제안됐다. 위안화 비중 60%대 초반, 엔화 비중 20%대 초반 등 네 가지 통화로 바스켓을 구성하는 식이다. 즉 각국이 해당 비율만큼의 디지털화폐 준비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초기에 리브라 발행을 추진하면서 미국 달러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등으로 구성된 통화바스켓 기반의 암호화폐를 구상했던 것과 비슷하다.
한중일 무역 확대, 위안화 국제화 '노림수' |
중국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위안화 국제화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이 이란 등 적대 국가를 대상으로 달러 거래를 끊는 제재를 강화하고 있어 중국이 달러화에 의존하지 않는 결제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 추진으로 중국의 디지털화폐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닛케이는 “중국 당국은 지난해 6월 발표된 리브라 구상을 경계하며 디지털위안화 연구를 가속화했다”면서 “페이스북이 주도하는 리브라가 사실상 달러와 마찬가지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도 지난 4월 미 당국의 우려를 염려해 발행 구상을 전격 수정하면서 중국이 느낄 위협감은 더욱 커졌다. 리브라를 주관할 리브라협회는 미국 달러화 같은 국가별 현행 화폐의 디지털 버전처럼 작동하는 다양한 리브라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가상화폐로 ‘1달러=1코인’ 등 기존 화폐에 고정된 가치로 발행된다.
리브라협회는 다만 메인 리브라코인의 경우 다양한 스테이블 코인들의 복합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일 암호화폐를 만들겠다던 페이스북의 애초 계획과 다르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6월 리브라 구상을 발표하면서 달러화나 유로, 미 재무부 채권 같은 다양한 통화로 구성된 통화바스켓에 연동되는 단일 암호화폐를 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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