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에서 숙박업을 하는 한모씨는 지난 3월 중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경영안정자금 대출 4,000만원을 신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뚝 끊긴 상황에서 연 1.5% 초저금리에 담보 없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이 상품은 가뭄의 단비였다. 하지만 ‘긴급 지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씨는 신청 후 세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돈을 받지 못했다. 한씨 같은 소상공인의 수요가 몰리면서 보증서를 발급해줘야 할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 처리가 밀렸고 정부가 집행 속도를 앞당기겠다며 정책 조정에 나서면서 대출 조건과 재원·기관도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씨는 지난달 말에야 소진공으로부터 “상품 자체가 시중은행으로 넘어가 기존에 신청한 내용대로는 대출이 어렵다”는 안내를 받고 은행 이관대출에 동의했다. 대출 한도는 2,000만원으로 낮아졌고 만기도 5년에서 3년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자금 사정이 어려운 한씨로서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는 “학원을 운영하는 지인도 세 달 넘게 기다리다가 따로 신용대출을 받아 이관대출은 포기하기로 했다고 들었다”며 “정작 급할 때는 못 받고 그나마도 금액이 줄어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의 긴급한 자금 활로를 뚫어주기 위해 정부가 지난달 말부터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 대출을 개시했지만 여전히 한씨처럼 1차 대출 집행을 기다리는 소상공인이 최소 3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소진공에서 처리하지 못한 2조원 규모의 대출액을 시중은행으로 넘겨 신속한 집행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1조원가량은 나가지 못한 상태다. 은행이 보증·심사 업무를 모두 위탁받아 한꺼번에 처리하는 2차 대출이 개시된 지 약 열흘 만에 2만건 가까이 집행된 데 비하면 여전히 더딘 속도다.
10일 관계부처와 금융권에 따르면 13개 시중은행이 소진공으로부터 넘겨받아 처리 중인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이관대출은 지난달 12일 개시된 후 8일까지 20영업일 간 절반가량이 집행됐다. 이 기간 신한·KB국민·NH농협·우리·하나은행 등 5대 은행에서 처리한 건수는 총 3만5,971건으로 금액으로는 7,928억원으로 집계됐다. 5대 은행에서 하루 평균 1,798건 집행된 셈이다.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대출은 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산하 소진공을 통해 지원을 시작한 정책금융상품이다. 지신보 100% 보증에 1인당 최대 7,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한데다 5년 만기 연 1.5%(2월은 1.75%) 고정금리 조건이어서 소상공인 수요가 대거 몰릴 수밖에 없었다. 통상적인 업무의 5~6배 규모로 신청이 몰려들자 지신보의 보증서 발급에만 1~2개월이 걸렸고 소진기금과 정부 예산은 순식간에 바닥났다. 결국 소진공 대신 시중은행이 이차보전 형태로 미처리분 2조원을 대출하기로 한 배경이다.
하지만 2~3월 신청 이후 3개월 넘게 지난 지금까지 돈을 받지 못한 소상공인들로서는 여전히 답답한 형편이다. 조정된 한도(2,000만~3,000만원)를 고려하면 최대 대출액 기준으로 추산해도 최소 3만3,000여명이 아직 대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시중은행으로 이관된 뒤에도 지신보가 담당하는 보증서 발급에 여전히 시간이 걸려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보증서 발급만 끝나면 은행은 당일 승인을 내줄 수 있도록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며 “2차 대출과 달리 이관대출은 보증서 발급을 지신보에서 하고 있어 보증 처리 기간에 따라 대출이 지연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시중은행이 신용보증기금 보증 업무까지 모두 위탁받아 처리하는 2차 소상공인 대출의 경우 5대 은행에서 8일 기준으로 11영업일 만에 1만9,468건이 집행됐다. 하루 평균 1,770건으로 처리 속도만 보면 이관대출을 거의 따라잡았다. 관계부처의 한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정책이 그동안 여러 번 바뀌면서 혼선이 생긴 점은 안타까운 부분”이라면서도 “보증 업무를 완전히 은행에 넘기면 방만하게 운영될 우려도 있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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