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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려면 줄 서”...스타트업의 이유있는 ‘거절’

저금리 유동성 풍부

벤처투자금액도 사상최고

흔해진 돈(투자자)은 이제 ‘을’

벤처투자금액 추이. /중소벤처기업부·한국벤처캐피탈




이달 초 300억원 가량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백패커는 펀딩 과정서 한 일 중 하나는 ‘거절’이었다. 수공예 작품 거래 플랫폼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는 시리즈B 펀딩서 초기기업부터 관계를 맺은 벤처캐피탈(VC)에게만 투자를 받았다. 몸값은 2,000억원을 훌쩍 넘었다. 매년 2배 이상씩 하는 성장세에 신규 기관투자가들은 군침을 삼켰다. 정해진 기업가치를 뛰어 넘는 몸값을 제시하며 투자금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주주명부에 끼지 못했다. 회사는 돈을 더 받기보다 창업부터 동고동락을 하며 사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기존 투자자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투자를 마무리했다.

자영업자들의 매출 관리 솔루션 캐시노트 운영사 한국신용데이터도 올 초 기업가치 3,000억원으로 평가받으며 100억원 규모 투자를 받았다. 지난해만 35만개 자영업자가 새로 고객이 될 정도로 성장세가 가팔랐다. 새로운 기관투자가들이 너도나도 뭉칫돈을 싸들고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백패커처럼 신규 기관에게 ‘미안하다’고만 할 뿐이었다.

최근 들어 스타트업의 이른바 기관투자가 ‘줄세우기’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사업 기초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이 모습은 더 또렷하다.

요즘 말로 ‘갑을관계’가 바뀐 것이다. 예전 같으면 투자를 해주는 VC가 귀한 몸이었는데 이제 저금리 장기화가 상황을 바꿔놨다.

시중 자금이 풍부해져 벤처투자금액도 매년 사상최대치를 갈아치운다. 기업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돈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돈’은 확실히 흔해졌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기업에 새로 투자된 금액은 4조2,777억원을 기록했다. 2001년 통계를 낸 후 사상최대 수준이다. 기관도 많아졌다. 2010년 창업투자회사는 103개였는데 지난해 149개로 늘었다. 투자조합도 같은 기간 66개에서 170개로 증가했다.



반면 창업기업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속도가 빠르진 않다. 중기부가 발표한 2019년 창업기업 동향을 보면 지난해 창업기업 숫자는 128만5,259개로 전년 동기 대비 4.4% 줄었다. VC가 주로 투자하는 기술창업은 같은 기간 3.9% 늘어난 22만개를 기록했다.

‘돈의 가치’가 지금보다 높았던 과거엔 상황이 달랐다. 돈을 가진 투자자는 소위 ‘갑’, 돈이 필요한 스타트업은 ‘을’이었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엔 한 스타트업은 창업자가 사업을 진행하다 병역을 이행하기 위해 군대에 갔는데 VC로부터 투자금을 되돌려 달라는 요구도 받은 사례도 있다”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타트업 대표를 일주일에 한번씩 불러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 받고 훈계를 하는 엑셀러레이터 대표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은 아직도 종종 벌어지고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돈이 넘친다고 아무 기업이나 투자할 노릇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스타트업의 가치가 높아지긴 하지만 양극화도 벌어지고 있다. 좋은 스타트업의 몸값이 평균보다 훨씬 더 올라가는 것이다.

VC 업계 관계자는 “시중자금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아무 회사나 투자할 수는 없다”며 “좋은 회사는 소수다 보니 뭉칫돈이 일부 좋은 기업에 몰려 상위권 스타트업의 몸값이 더 높아지는 현상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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