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이 남북 연락 채널을 단절한 북측에 미국이 “실망”했다고 밝힌 데 대해 “입을 다물고 제 집안 정돈부터 하라”고 일갈했다.
다만 북한은 강한 불쾌감을 표하면서도 외무성 국장 명의로 담화문을 내 수위 조절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11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물음에 답하는 형식을 통해 “북남관계는 철두철미 우리 민족 내부 문제로서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질할 권리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권 국장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흑인사망 항의 시위 등으로 어지러운 미 상황을 지적하며 “미국 정국이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때에 제 집안일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집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며 함부로 말을 내뱉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좋지 못한 일에 부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우리와 미국 사이에 따로 계산할 것도 적지 않은데 괜히 남조선의 하내비(할아버지) 노릇까지 하다가 남이 당할 화까지 스스로 뒤집어쓸 필요가 있겠는가”라면서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입을 다물고 제 집안 정돈부터 잘하라”고 맹폭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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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은 물론 당장 코앞에 이른 대통령선거를 무난히 치르는 데도 유익할 것”이라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까지 걸고 넘어졌다.
권 국장은 또 “북남관계가 진전하는 기미를 보이면 그것을 막지 못해 몸살을 앓고, 악화하는 것 같으면 걱정이나 하는 듯이 노죽을 부리는 미국의 이중적 행태에 염증이 난다”면서 “미국의 그 ‘실망’을 지난 2년간 우리가 느끼는 환멸과 분노에 대비나 할 수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 9일(현지시간) 북한이 전날 남북 연락 채널을 폐기한 데 대해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가 북한의 대남정책에 실망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한다고 신속하게 입장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남북 간의 긴장관계 고조가 북미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패와 백인 경찰의 강경진압에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 등으로 국내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레드라인(금지선)’인 핵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나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안팎으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해 ‘북한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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