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디스플레이 구동 반도체(DDI)’ 양산에 나서며 삼성전자(005930)·매그나칩반도체·실리콘웍스 등 한국의 DDI 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 기업 에스윈은 삼성전자 사장 출신을 ‘부총경리(부회장급)’로 영입하는 등 ‘인재 빼앗기’에 기반 한 자국 디스플레이 생태계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에스윈이 BOE, CSOT 등 중국 OLED 제조 업체에 DDI를 납품해 시장 점유율을 키울 것이라 보고 있다.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CD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및 삼성전자 중국전략협력실장 등을 역임한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중국 에스윈으로 자리를 옮겼다. 에스윈은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 창업자인 왕둥성 회장이 지난 2016년 설립한 업체다. 업계에서는 에스윈이 OLED용 DDI를 양산해 BOE에 납품할 것으로 보고 있다. BOE는 화웨이를 비롯해 비보, 오포, 샤오미 등 자국 스마트폰 업체에게 에스윈의 DDI가 탑재된 OLED 패널을 공급할 예정이다. 왕둥성 회장 입장에서는 OLED용 디스플레이와 DDI의 수직계열화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BOE는 OLED 부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며 또 다른 ‘디스플레이 굴기’를 노리고 있다. BOE의 주력인 LCD 사업은 삼성디스플레이가 올해 사업 철수를 선언할 정도로 ‘치킨게임’이 진행 중인데다 이익률도 OLED 대비 낮기 때문에 OLED로의 발빠른 전환이 필수다. OLED는 LCD 대비 공정이 복잡하고 수율도 낮아 중국 업체의 존재감은 아직 미약하지만, LCD 시장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가파른 점유율 확대가 예상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BOE는 중국 충칭에 465억위안(약 7조8,000억원)을 투자해 6세대 OLED 공장을 건설 중에 있는 등 공격적 시장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니아에 따르면 BOE는 지난해 4·4분기 스마트폰용 OLED 점유율이 2.1%에 불과하지만 ‘규모의 경제’ 확보와 기술력 향상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BOE의 타깃은 한국 업체다. 지난해 4·4분기 기준 스마트폰용 OLED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은 85.3%, LG디스플레이(034220)는 8.9%로 사실상 ‘한국 천하’다. 다만 이 같은 추이는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시장조사기관 DSCC에 따르면 플렉시블 OLED 시장의 경우 2016년만 해도 삼성디스플레이(87%)와 LG(003550)디스플레이(13%) 등 한국업체의 독무대였지만, 2025년에는 BOE(30%)와 차이나스타(12%)와 같은 중국 업체 점유율이 삼성디스플레이(30%)와 LG디스플레이(8%) 등 한국 업체 점유율을 넘어설 전망이다. 전체 모바일 OLED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2020년 31%에서 2025년 53%로 상승하는 반면, 한국 업체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67%에서 46%로 하락할 전망이다.
BOE의 이 같은 급성장세에는 한국 기술 도용과 인재 빼가기 등이 자리하고 있다. BOE는 현대전자 LCD 사업부에서 출발한 하이디스를 2002년 인수해 기술력을 키웠다. BOE는 이후 기술공유를 명분으로 전산망을 통합한 다음 하이디스 기술을 빼내 갔으며, 이를 기반으로 2003년 6월 중국에서 LCD 양산에 나선다. 당시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BOE가 빼 간 하이디스 기술 자료는 4,331건에 달한다. 4년 뒤 BOE는 하이디스를 대만 이잉크에 매각하며 이른바 ‘먹튀 행보’를 완수한다.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중국업체와의 경쟁이 갈수록 힘에 부친다고 하소연 한다. 중국은 LCD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 이미 2017년에 한국을 제쳤으며 점유율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LCD 공장 건설 시 세제 혜택을 비롯해, 각종 인력 채용 시에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중국 디스플레이 사업을 육성해 왔다. 특히 중국은 지방 정부 간의 경쟁으로 반도체 등 핵심 사업 육성을 위한 각종 세제 지원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이 지난 10일 중국 화학업체인 산산에 LCD 편광판 사업부를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 매각하기로 한 것 또한 LCD 사업 주도권이 이미 중국에 넘어갔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의 한국 인력 빼가기도 여전하다. 지난 4월에는 국내 한 채용 사이트에 “65인치 대형 OLED 패널 10년 이상 경력자를 구합니다”라는 채용 공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대형 OLED 패널 기술 확보에 주력 중인 BOE 등 중국 업체가 내 건 채용 공고로 파악 중이다.
중국은 ‘디스플레이 굴기’를 자신하고 있다. 중국 최대 TV 사업자 TCL의 창업자인 리둥성 회장은 최근 “이미 중국 업체들이 대형 디스플레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이 같은 비중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세계 유일의 대형 OLED 패널 생산 업체인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양산을 계획 중인 삼성디스플레이가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분전하고 있지만 중국의 기세에 차츰 밀려나는 모습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 및 엄청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한 중국 업체의 공세에 한국 업체의 위상이 위축되는 모습”이라며 “단순 기술력 향상만으로는 중국과의 격차 유지도 버겁다는 점에서 인재 및 특허 유출 등에 관한 우리 정부의 조치와 추가적인 육성 전략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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