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금융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지난해 12월 27일 아시아나를 사겠다고 서명을 한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아시아나 채권단인 산업은행에 공개 입장문을 발송했고, 산은도 보도자료를 내는가 하면 아시아나 역시 공개자료로 현산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그동안 물밑에서만 움직이던 아시아나 인수 ‘3인방’이 각자와 통하는 직통전화는 놔두고 공개 문서를 주고받으며 ‘공중전’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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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도 사전에 몰랐다” 현산의 깜짝 입장문
우선 화요일이던 지난 9일 오전 10시 현산은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통해 산은 등 채권단에 공개 입장을 전달합니다. 현산은 “아시아나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며 “인수조건 재협의를 위한 계약 기한 연장에 공감한다”고 적었습니다. 이 같은 입장문은 산은에 사전에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산은도 공개된 입장문을 토대로 현산의 입장 분석에 착수했습니다.
당초 현산의 입장이 나온 9일 오후 산은도 입장을 낼 것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다음날인 10일 오후 3시가 돼서야 나왔습니다. 입장문의 톤 조절과 문구 조정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산은은 “현산의 인수 의지 표명을 환영한다”면서도 “인수 확정 조건에 관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동안 산은, 금융당국 내에서는 ‘현산이 아시아나를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됐든 현산이 인수의지를 공개 표명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하지만 산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입장문을 구석구석 뜯어보면 ‘까칠한’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산은은 “재협의를 서면으로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그럼에도 현산이 서면을 통해서만 논의를 하자는 것은 자칫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현산이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서면을 통해 각자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자”고 하자 “서면으로 할 사안이 아니다.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또 산은은 “재협의와 관련해 현산이 먼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해 달라”고 공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현산은 “인수조건에 대한 원점에서의 재협의”를 요구한 반면 산은은 ‘원점’이라는 문구를 빼서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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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자료 투명하게 제공했다” 현산에 공개 반박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나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나는 현산이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에 “요구하는 자료를 성실하게 제공했다”며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아시아나는 11일 자료를 내고 “현산이 언급한 재무상태의 변화, 추가자금의 차입, 영구전환사채의 발행 등과 관련된 사항은 그동안 거래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신의성실하게 충분하게 제공하고 협의 및 동의 절차를 진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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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보다 못한 금융위원장이 나섰습니다. 은성수 위원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현산은 상황이 변했으니 인수 조건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산은은 빨리 거래를 종결하고 싶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책당국자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을 빨리 끝냈으면 한다. 두 당사자가 만나서 대화를 하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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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락하자 계약조건 바꾸자는 현산...새 주인 찾기 힘들어 제안에 응한 산은”
시장에서는 현 상황을 부동산 거래에 빗대서 이해하면 쉽다는 말도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집을 매수해 등기를 치기 2~3달 전에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집주인에게 보냅니다. 이후 갑작스러운 경제충격으로 집값이 폭락 하면 매수자의 선택지는 두 가지 입니다.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엎거나 매수를 강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산은 “인수는 할테니 대신 계약 조건을 좀 바꾸자”고 나선 셈입니다. 현산 말고 다른 매수자를 찾으려니 앞이 캄캄한 산은은 떨떠름하지만 재협상에 응한 형국입니다.
관심은 앞으로입니다. 현산이 아시아나를 최종적으로 인수할지는 ‘생물’과 같이 상황에 따라 변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계약 후 아시아나의 부채는 채권단으로부터의 1조 7,000억원 차입과 추가 부채로 인식된 2조 8,000억원 등 총 4조 5,000억원에 달합니다. 현산과 미래에셋 컨소시엄이 계약금 2,500억원을 포기하고 두 손을 드는 게 낫다는 주장이 많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반론도 많습니다. 만약 현산이 아시아나를 놓친다면 기업 평판상 앞으로 항공사를 인수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현산을 ‘모빌리티 그룹’으로 키우겠다는 정몽규 회장의 꿈을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양측은 앞으로 2조 5,000억원이라는 아시아나 인수가액 인하, 아시아나의 현주인인 금호 측에 줄 주식(구주) 매입대금의 인하 외에 다양한 사안에 대한 협의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은행(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대한민국 인수합병(M&A)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며 “흥미진진한 상황이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논의가 이어질지, 결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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