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무역협상의 메카인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의 통상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고 있지만 한국은 인력난 속에 기존 통상마찰 이슈들을 처리하기도 쉽지 않아 신(新)통상질서를 수립하려는 국제적 조류에 뒤처질 우려가 제기된다.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를 담당하는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에서 통상업무를 전담하는 정부 관계자는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통상업무를 맡았던 지난 2013년과 비교하면 전담인력이 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통상업무가 산업부로 이관되자 외교부 직원 일부가 ‘경제외교’라는 명목으로 제네바 대표부에 남았지만 통상과는 거리가 멀다. 제네바 공관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경제외교는 국가 간 협력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주 업무로 WTO의 통상 이슈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전했다. 2년째 제네바 대표부를 총괄하는 백지아 대사도 전임인 최경림·최석영 대사와 달리 통상 전문가가 아니다.
제네바의 통상 인력은 반 토막 났지만 트럼프 정부의 공세에 일본 정부까지 가세해 무역분쟁은 급증했으며 코로나19로 다자간 무역협상 이슈들도 급변하고 있다.
통상 전문인력의 부족은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미국·중국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통상 전담 인력은 사실상 1~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통상업무가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이관된 지 7년이 됐지만 전 세계 공관에 산업부 파견인력은 4명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 주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세종=김우보·조양준기자 ubo@sedaily.com
통상 조직개편 7년 지났지만...해외공관 인력 조정은 방치 |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을 벌이면서 세계무역기구(WTO)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보호무역주의도 득세해 국제 통상 질서는 ‘시계 제로’에 빠졌지만 정부의 통상 대응 능력은 이전보다 약화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상 전쟁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공관의 통상 전담 인력 조정이 7년째 답보하면서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공관의 통상 인력 부족은 지난 2013년 통상 업무가 외교통상부에서 산업자원부로 이관될 때부터 제기됐던 문제 중 하나다. 통상교섭 업무가 산업과 외교적 측면이 혼재돼 새 정부 출범 때마다 통상 기능을 어느 부처에 둘지는 ‘뜨거운 감자’였지만 정부 조직개편 이후에도 효과적 인력 재편은 미뤄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통상부의 ‘통상’이 산자부로 넘겨졌지만 해외 공관의 통상 인력 개편 논의는 배제돼왔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통상 조직 개편이 갑작스럽게 발표되면서 국내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할지부터 논의하다 보니 해외 공관 문제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고 말했다. 이후 산업부 내에서 통상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려면 해외 공관 파견 인원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자칫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개적 논의를 꺼려왔다.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방치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해외 공관에 파견하는 인력은 4명(2013년 49명→현재 53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해외 공관에서 보면 통상 인력은 거의 늘어난 것이 없는데 업무만 넘겨받은 셈이다.
정부 조직 개편 전 통상 업무를 담당했던 외교부 인력들이 일정 부분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한계는 분명하다는 평가다. 최근까지 제네바 공관에서 통상업무를 담당했던 한 인사는 “외교부 직원들이 지원을 할 때도 있지만 자기 소관 업무가 아니다 보니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몸을 빼기 마련이어서 원활한 일 처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해외 공관 운용에 우선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속 부처가 다르더라도 같은 곳에 파견돼 있다면 정부 공무원은 ‘원 보이스’를 내려 노력해야 한다”며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총괄기능을 되살려 협력을 도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관 파견 인력 조정이 근본적 해법으로 거론되지만 당장 어렵다면 양측의 업무 협력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게 통솔 체계라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통상 분야 전문가는 “통상 업무가 중요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공관 내 모든 경제업무를 조율하는 경제공사 자리에 외교보다는 산업·통상을 잘 아는 인사를 우선 배치해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차원에서는 장기적인 통상 전문가 육성을 위해 내부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행 산업부 내에 통상 전문이 아닌 산업정책과 에너지까지 두루 아우르는 인재를 중시하는 인사 풍토에 대한 지적이다. 또 다른 통상 전문가는 “(산업부가)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멀티 플레이어’를 인사 원칙에서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제네바 공관에서 복귀한 직원이 통상 업무와 전혀 무관한 곳으로 발령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안덕근 국제통상학회장은 “통상 인재는 다양한 협상 경험을 가져야 한다”며 “경험을 쌓지 못하게 한다면 국가적으로 통상 인력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우보·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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