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금융권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의 ‘네이버페이 후불결제 서비스’가 다음달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금융위는 핀테크 결제사업자에도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하면 소액 후불결제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네이버파이낸셜은 올 2월 후불결제 서비스의 혁신금융서비스 신청을 마쳤다. 혁신금융으로 지정되면 최대 4년간 규제가 유예·면제된다. 현재 신용카드업 면허 없이는 할 수 없는 신용공여 기능을 네이버페이가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을 위한 ‘우회진입로’도 구축했다. 혁신금융 지정과 별개로 네이버파이낸셜은 이달 초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돼 미래에셋캐피탈과 함께 네이버페이를 이용하는 개인과 소상공인들에 대한 대출이 가능해졌다. 네이버파이낸셜이 입점 업체의 판매실적·반품률, 개인의 결제지연·쇼핑등급 등에 따라 신용을 평가하고 미래에셋캐피탈을 통해 돈을 빌려주는 식이다. 사실상 신용대출 영업의 길이 열린 셈이다.
네이버는 ‘통장’을 시작으로 대출의 문턱을 넘어 하반기에는 보험상품까지 내놓을 예정이다. 이처럼 네이버가 금융업 진출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이용자들의 금융정보를 쓸어모으는 마이데이터 사업까지 도전하자 ‘네이버공화국’ 실현이 가시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회장인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핀테크와 빅테크, 기존 금융권의 주체별 디지털 자원이 상이하다”며 “자본과 네트워크까지 완전히 다른 이들을 똑같은 눈높이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각 주체별 여건을 고려한 세밀한 정책 없이 금융개방에만 집중할 경우 거대 정보기술(IT) 회사인 네이버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금융하자더니 新독과점 될판
# 2025년 6월. 20대 대학생 김철수씨는 은행 계좌도 체크·신용카드도 없지만 일상적인 금융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쇼핑은 ‘네이버 쇼핑’이나 네이버와 가맹을 맺은 오프라인 상점에서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한다. 후불결제도 가능하니 번거롭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현금이나 다름없는 네이버포인트만 있으면 웹툰·음악·영화 등도 결제할 수 있다. 높은 적립률도 매력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0.1% 남짓인 마당에 포인트를 충전할 때마다 2%, 포인트로 결제할 때마다 1%를 또 적립해주기 때문이다. 네이버페이 계정에 남아 있는 여윳돈은 네이버 제휴 증권사의 머니마켓펀드(MMF)로 굴리거나 다른 금융사의 예적금·펀드 등에 골라 넣을 수 있으니 간단한 재테크도 문제없다.
# 2026년 2월. 40대 직장인 이영미씨는 ‘카카오 유니버스’에 살고 있다. 전날 ‘카카오 클라우드’를 통해 회의자료를 공유한 이씨는 ‘카카오T’로 불러둔 택시로 출근했다. 차 안에서 스마트폰 속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증권에 접속해 은행·재테크 업무를 보고 택시요금 결제는 카카오의 독자통화인 가상자산(암호화폐) 클레이로 한다. 그는 주말에 예정된 산행에 대비해 카카오 디지털 보험사에서 이틀짜리 레저보험도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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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년 뒤를 그린 이 가상 시나리오는 유통·클라우드·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물론 결제·수신·대출·자산운용 등 금융업까지 ‘빅테크’가 휘어잡은 미래를 보여준다. 그리 먼 얘기는 아니다. 미국의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텐센트 등은 이미 막대한 데이터와 자본, 광범위한 사용자 네트워크와 물류망을 토대로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완결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7년에 ‘아마존화되다’라는 뜻의 ‘아마조나이즈드(Amazonized)’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검색 서비스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
금융업 '카피'하는 네이버 |
네이버는 면허 없이도 기존 금융사와의 제휴전략으로 수신·대출·신용공여 등 금융업의 핵심 서비스를 ‘복제’하고 있다. 네이버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사업자의 막대한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쥐고 있는 만큼 금융 서비스를 설계·제공하는 방식도 한층 효율적이다. 네이버가 미래에셋캐피탈과 함께 선보일 ‘스마트스토어’ 입점업체 대상 대출도 사업자의 판매실적, 재고 상황, 반품률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네이버이기 때문에 가능한 서비스다. 이미 2011년 아마존렌딩으로 매출망 금융 서비스를 시작한 아마존의 선례도 있다. ‘아마존뱅크가 온다’의 저자 다나카 미치아키는 “융자 서비스는 은행과 제2금융권의 독무대였는데 아마존은 상류·물류·금류의 데이터를 활용해 기업대출의 주요 참여자로 도약하려는 것”이라며 “엄격한 규제에 속박당하는 면허 없이도 (정보기술 기업에 의해) 모든 금융 업무는 유사하게 창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휴·업무 세분화로 규제는 회피 |
금융시장·데이터 독과점 우려 |
해외에서는 빅테크의 금융시장 진출에 대응해 새로운 규제책을 짜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아마존을 비롯한 거대 IT 기업의 반독점 문제와 관련해 조직을 꾸려 조사에 나섰고 중국은 지난해 알리페이·위챗페이 등을 겨냥해 비금융사가 고객 결제자금을 임의로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를 신설했다. 한국금융학회·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소비자 보호 등의 문제가 걸린 만큼 금융 영역에 들어왔다면 기존 금융기관과 같은 건전성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종호·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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