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92년부터 7년동안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침공했다. 다리우스 1세에 이어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까지 이어지는 파상공세였다. 그리스의 핵심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경쟁관계를 접고 손을 잡았다. 육지에서는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했고, 바다에서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이겼다. 특히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의 정예병사들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면서 그리스 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줬다. 결국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패퇴시켰다. 국난(國難) 상황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똘똘 뭉쳤기에 가능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BC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졌다. 어제의 전우(戰友)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눴다. 민주정치를 표방했던 아테네는 다른 폴리스들을 규합해 델로스 동맹을 맺었고 과두정치를 내세웠던 스파르타는 이에 맞서 코린토스, 메가라 등을 포섭해 펠로폰네소스동맹을 결성했다. 그리스 전체가 2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져 형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참상이 벌어졌다. 결국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패망시키고 패권을 차지했지만 북쪽에서 밀고 내려온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로 양보하지 않고 분열하면 필망(必亡)한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벼랑끝에서 눈물겨운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는 자국이기주의를 내세우며 관세장벽을 드높이고 있고 자기진영에 가담하지 않을 경우 보복을 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수출의 40%를 G2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골병이 든 형국이다. 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6월 1~20일 수출액은 25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억4,000만 달러 줄어 7.5% 감소했다. 수출액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후폭풍이 나타난 지난 3월 이후 줄곧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로서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책은 역주행이다. 기업 투자를 자극해 일자리를 창출하기는 커녕 한발 앞으로 나가려고 애쓰는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노동자는 내편-기업은 몽둥이 대상’이라는 화석화된 도그마에 빠져 기업지원 정책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있다. 당정은 약속이라도 한듯 이달부터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176석의 거여(巨與)의석을 내세워 밀어붙일 태세다.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임, 전속고발권 폐지 등 경영권 방어를 힘들게 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도록 방치하는 조항들이 수두룩하다. 법안이 통과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과 문제점을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알면서도 노조와 표심을 의식해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반면 정작 팔을 걷어붙여야 할 일에는 먼 산 바라보 듯 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어, 재택근무, 특수고용 등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해 탄력근로와 유연근무를 확대해야 하고 최저임금 인상도 속도조절에 나서야 하지만 노조 등살에 밀려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노동개혁은 제자리 걸음이다.
기업과 노조를 무 자르듯 이분화 시켜 일방의 주장과 요구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그 나라 경제는 중심을 잃고 뒤뚱거리다가 결국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경제는 이웃 국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근린 궁핍화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에 한층 열을 올릴 것이고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는 주요 타깃이 될 수 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 노조가 힘을 모아도 대처하기가 버거운 판에 서로 편을 가른다면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백전백패는 뻔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교훈을 깊이 되새겨야 할 때이다./서정명 경제부장 vicsj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