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금융업자가 받을 수 있는 이자 한도를 현재 24%에서 6%로 낮추는 방안이 추진된다. 불법 사금융업자도 합법적인 대부업체와 마찬가지로 법정 최고이자 24%를 챙길 수 있는 데 제동이 걸린 것이다. 또 길거리에 무차별적으로 배포되던 불법 사채 명함과 유튜브 등에서 성행하던 온라인 불법 사금융 광고도 사라진다.
금융위원회·법무부·경찰청·국세청 등 정부 부처는 23일 이 같은 내용의 불법 사금융 근절방안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저소득층과 노령층을 상대로 불법 사금융 시도가 증가한 데 따른 조치다. 근절방안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업자가 받을 수 있는 법상 이자 한도는 현행 24%에서 6%로 낮아진다. 6%를 넘는 이자 지급분은 원금 변제에 충당하고 원금 변제 후 남은 금액은 차주가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 등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관계부처는 또 오는 29일부터 연말까지를 불법 사금융 특별 근절기간으로 선포하고 신종 영업수법, 온오프라인 불법 사금융 광고 등에 대한 신속경보체계를 운영한다. 유튜브와 페이스북·네이버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포털에서 성행하던 온라인 불법 사금융 광고가 사라진다. 길거리와 상점 앞에 무차별적으로 배포되던 불법 사채 명함과 전단지·현수막도 단속될 예정이다.
대부업법 개정안 이달중 입법예고…신종기법 등장땐 '경고문자' 발송 |
정부 부처가 불법 사금융에 칼을 빼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출 수요가 늘어난 틈을 타 서민을 대상으로 한 불법 대출이 기승을 부리면서다. 정부 부처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제도 개선과 즉각적 단속을 통해 불법 사금융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 근절 방안의 핵심은 불법 사금융업자의 최고 이자율을 현행 24%에서 6%로 제한한 데 있다. 현재는 불법 사금융업자가 최고 금리를 초과하는 고금리로 불법 대출을 해도 합법적인 업자와 마찬가지로 최고 금리 수준인 24%까지 이자를 받는 게 가능했다. 이를 상법상 개인 간 상거래에 적용되는 이자율인 6%까지만 받을 수 있게 바꾼 것이다. 6%를 넘는 이자 지급분은 원금 변제로 충당하고 이후 남은 금액은 차주가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금융위원회 측은 “불법 사금융은 이자를 아예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른 법 체계와 연관성, 과잉금지원칙 등을 고려해 6%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원금에 연체이자까지 합친 금액에 이율을 적용하는 재대출에도 제동을 걸었다. 가령 기존에는 100만원을 이율 20%로 빌려서 갚지 못하면 연체이자를 포함해 120만원을 다시 대출할 때 120만원 총액에 이자율을 적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원금 100만원에만 이율이 적용되도록 한다.
불법 사금융 광고에 대한 처벌 근거도 명확하게 규정한다. 현행법상 대출상품명을 도용할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공 기관을 사칭하는 경우에는 처벌 규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서민금융진흥원’과 유사한 ‘서민금융진흥연합회’ 식으로 불법 사금융 광고를 진행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발됐다. 정부·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등을 사칭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처벌 수위도 현행 벌금 3,000만~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한다. 정부 부처는 이 같은 제도 개선책을 포함한 대부업법 개정안을 이달 중 입법 예고해 연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제도 개선과 별도로 즉시 불법 사금융 광고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도 시행한다. 관계부처는 오는 29일부터 연말까지를 ‘불법 사금융 특별근절기간’으로 선포하고 예방·차단-단속·처벌-피해구제-경각심제고 등 전 단계에 걸쳐 즉각적인 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당장 금융감독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방송심의위원회 등이 함께 온·오프라인 불법 사금융 광고를 대대적으로 단속한다. 불법 온라인 광고의 경우 방심위에 접속 차단을, 오프라인 광고는 과기정통부에 전화번호 이용 중지를, 스팸 문자는 인터넷진흥원에 스팸 발신 차단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한 신종 수법 출현 및 피해 증가가 우려될 시에 긴급재난문자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경고 문자도 발송한다.
적발된 불법 광고·통신수단은 방통위와 과기정통부 등의 긴급차단절차를 적용해 빠르고 지속적으로 차단한다. 종전 2개월에 걸쳐 차단되던 불법 사금융 온라인 광고를 2주 내외에 차단되도록 한다. 전화번호는 3일 내외로 차단된다. 통신사 변경 시에도 차단은 유지된다. 오프라인에서는 불법 대출 전단 등이 상습 배포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단을 집중 수거해 단속 수사에 활용하고 노출을 최대한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연말까지 강도 높은 단속을 펼치기로 한 데는 불법 사금융 피해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됐다. 하루 평균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제보는 지난 5월 30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0건에서 껑충 뛴 셈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생활고를 겪는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피해를 볼 확률이 큰 만큼 피해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이 같은 근절 방안이 인터넷에서 우후죽순으로 퍼지는 불법 사금융 광고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2주 내 불법 사금융 온라인 광고를 차단하겠다고 했지만 하루도 안 돼서 새로운 사이트 개설이 가능한 탓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가운데 전산 연계 등을 통해 2주에서 2~3일로 더 빨리 차단이 가능하도록 개발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전 필요한 취약계층에 술수…4·5월 피해 신고·제보 60%↑ |
당장 등록금 낼 돈이 한 푼도 없었던 대학생 A씨는 꼼짝없이 범죄자 신세로 전락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휴대폰 개통 시 즉시 100만원 지급’이라는 내용의 명함형 대출 광고를 보고 연락을 취한 것이 화근이 됐다. 연락 당시 최신 휴대폰을 개통해서 유심칩과 함께 가져오면 현금을 주겠다는 업체의 말에 A씨는 의심 없이 그대로 실행했다. 문제는 업체에 휴대폰을 제공한 직후부터였다. A씨는 연 50%의 고금리 대출과 동일한 수준인 휴대폰 요금 24개월분(192만원)을 납부해야 했다. 국제전화 요금도 매월 50만원 이상씩 A씨 앞으로 청구됐다. 이후 A씨 명의였던 제공 휴대폰은 결국 범죄에까지 사용돼 A씨는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금융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4월과 5월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와 제보는 전년 대비 60%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일평균 신고·제보 건수는 20건 수준이었지만 올 4월과 5월에는 각각 35건·33건으로 뛴 것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돈줄이 마른 서민들이 늘어나자 불법 사금융 업체들이 이를 악용해 정부와 금융공기관·은행을 사칭하는 사례까지 연이어 등장했다. 광고에 ‘코로나19’ 문구를 추가하고 제도권 금융기관을 사칭하는 수법으로 취약계층이 불법 대출에 손을 대도록 유도한 것이다. ‘코로나19 통합대환대출’ ‘서민금융원’ ‘KB국민지원센터’ 등 정책 금융상품이나 공적기관과 금융기관으로 오인되도록 광고하는 식이다.
자영업자 B씨도 이 같은 수법에 당했다. B씨는 코로나19에 따른 영업부진으로 자금난을 극심하게 겪던 중 ‘코로나 자영업자 특별지원 대출은 서민금융원에서’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상대는 제대로 된 계약서도 없이 대출을 진행해줬고 이후 연 수백%의 고금리 이자를 B씨에게 요구했다. 존재하지도 않은 공공기관으로 사칭한 불법 사금융업자의 일수대출이었던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성행하던 불법 사금융 광고는 온라인으로까지 넘어와 10대 등 청소년과 마땅한 수입원이 없는 주부까지 현혹하고 있다. 중학생 C군은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고 싶었지만 당장 현금이 없어 고민하던 찰나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티켓대금을 대리 입금해준다는 광고글을 접했다. 티켓대금 10만원을 C군 대신 입금해줄 테니 3일 후에 수고비 1만원과 함께 상환해달라는 조건이었다. 티켓대금 대리입금 이후 해당 업체의 태도는 돌변했다. 입금 며칠 만에 연 이자율 수백~수천%에 달하는 초고금리 대출이자를 C군에게 강요했고 이를 갚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제공받은 주민등록증과 부모 연락처를 활용해 알리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주부 D씨 역시 급전이 필요해 돈 빌릴 곳을 찾던 중 인터넷 동호회 커뮤니티에서 모바일상품권 관련 게시글을 접했다가 낭패를 봤다. 게시글은 휴대폰 소액결제로 20만원짜리 모바일상품권을 구입해 온라인상으로 상품권코드를 보내주면 즉시 현금 17만원을 입금해준다는 내용이었다. D씨는 업체에 모바일상품권 코드를 보냈지만 상품권 구입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현금으로 받았다. 연 수백%에 달하는 초고금리 이자를 부담하는 대출과 동일한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들 불법 사금융 업체는 빈번한 불법 추심행위로 취약차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실제 불법 사금융의 불법 채권 추심 비중(8.9%)은 제도권 대부업(4.6%)보다 2배나 많았다. 불법 추심 외에도 빚을 내 변제를 요구하거나 가족 등 제3자에게 변제를 강요하는 등 채무자뿐 아니라 채무자의 가족과 지인들까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도록 옥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불법 사금융 업체들은 취약차주들에게 빚을 내거나 제3자를 통한 채무 변제를 강요하는 등 악질적인 경향을 보인다”며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범죄행위에 대해 강력한 척결 의지를 표명하고 범정부적 역량을 총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영·이지윤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