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2개 크릴오일 제품에 대해 전량 회수 및 폐기조치를 내렸다. 살충제 성분인 에톡시퀸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 이유에서다. 에폭시퀸은 크릴새우가 먹는 갑각류·어류 사료에 산화방지 목적으로 사용하는데 과다 섭취 시 신경계 마비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크릴오일은 남극해에 서식하는 크릴새우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4050 중장년 계층이 홈쇼핑과 온라인쇼핑을 통해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섭취했다.
4050 중장년들은 왜 ‘아기펭귄 도살자(크릴새우는 아기펭귄의 주된 먹이로 크릴새우 남획으로 먹이가 부족해지자 사냥에 나간 어미를 기다리다 죽는 아기펭귄이 많아졌다)’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굳이 안 먹어도 되는(혹은 돈 들여 사 먹고 오히려 탈이 날 수 있는) 것까지 탐하는 것일까. 크릴오일이 심혈관 질환에 좋다는 속설을 맹신한 탓이다.
심근경색, 협심증, 심부전, 부정맥, 뇌졸중, 고지혈 등을 아우르는 심혈관 질환은 대표적인 중장년 질환이다. 서서히 진행되며 아주 고통스럽게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큰 시련을 전하는 암과 달리 심혈관질환은 느닷없이 찾아와 예기치 못하게 목숨을 앗아가는 질환이다. 이것이 두려운 중장년들은 생활 속 심혈관 질환 예방이라는 광고에 현혹돼 크릴오일을 마구 사 먹었다.
라이프점프의 주 독자층인 중장년들의 심혈관 건강정보 취재차 만난 임영효 서울 한양대병원 심혈관 전문의는 4050 세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면서 “크릴오일 좀 먹지 마시라”고 강조했다. 그럴 시간에 “계단을 오르라”고 조언했다. 무슨 이유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이날 인터뷰는 삼엄한 방역을 뚫고 입장한 심혈관 수술실에서 진행됐다.
-자기소개부터 해달라.
“한양대학교병원 심혈관 질환 전문의 임영효 교수다.”
-계속 심혈관 쪽만 해오신 건가? 의료계를 잘 몰라서 드리는 질문이라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지 몰라서 그렇다.
“뭐 그렇게 물어보셔도 된다. 주전공이 심혈관이고 10년 이상 이쪽 분야에서만 일했다.”
-서두에 언급한 크릴오일 이야기부터 해보자. ‘제발 크릴오일 좀 먹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크릴오일이 건강기능식품으로 엄청나게 유행을 하고 있다. 심혈관 질환에 좋다고 믿으니까 사서 드시는 건데, 잘 생각해보자. 크릴오일은 약이 아니고 건강이능식품이다. 임상효과란 것이 애당초 없다. 의사는 이런 것 드시라고 하지 않는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은 수많은 임상데이터와 결과치로 공식적인 약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카더라’만 믿고 효능이 확실하지도 않는 것을 먹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보면 ‘좋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 저것 먹는 사람들 많다. 심지어는 약을 나눠 먹거나 어둠의 경로로 얻은 ‘몸에 좋다는’ 약을 먹는 분들도 많다.
“‘누가 좋다더라’면서 약 먹는 분들 많지. 그런데 ‘누가’가 도대체 누굴까?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누가’가 현실에서는 의사다.
고혈압 환자가 약을 먹는다 치자. “이 약 효과 좋다”는 환자의 말을 듣고 고혈압 앓는 사람이 똑같은 약을 먹어도 될까? 안 된다. 약이라는 것이 수 백가지다. 그 말은 약이 야기하는 합병증도 수 백가지란 이야기다. 이런 사람들 생각보다 많다. 충분한 약을 처방해드렸는데도 약이 모자라다고 하는 환자한테 물어봤더니 약을 주변에 나눠줬다 하더라. 이러면 안 된다.“
-약에 대한 내성반응도 문제가 될 것 같은데.
“내성반응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약을 왜 먹는지다. 몸에 좋은 약은 없다. 보약이란 말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약이 몸에 들어오면 간이 해독해야 한다. 그런데도 약을 먹는 것은 해악보다 득이 큰 경우에 한해서다. 약을 먹지 않았을 때 마주해야 하는 합병증의 부작용이 더 커서 이를 막기 위해 약을 먹는 거다. 입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을 의사 처방약과 함께 먹는 것은 결단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말씀 듣고 보니 반성하게 된다. ‘누가 심혈관 질환에 좋다’고 하면서 건넨 아스피린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약 섭취와 관련해 잘못된 인식이 또 있을까.
“이런 건 어떤가. 약은 식후 30분 후에 먹는 게 맞을까? 이거도 잘못된 인식이다. 하루에 한 번 먹어야 하는 약은 한 번만 먹으면 되고 두 번 먹는 약은 일과 중에 두 번에 걸쳐서 먹어야 한다. 어떤 약은 공복에 먹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복용약을 식사와 연결 시키는 이유는 과거에 시계도 없고 때를 맞추기 어려울 때 밥은 먹어야 하니 그 주기를 따르면 간편하니까, 그렇게 굳어진 거다. 환자한테 아침에 복용하시라고 처방했더니 밥을 안 먹어서 해가 될 것 같아서 아예 먹지 않았다는 모습을 자주 본다. 잘못된 관행의 결과다.“
-자, 그러면 심혈관 질환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자. 심혈관 질환은 40대 이후 중장년들에게 위험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혈관을 위협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가족력이다. 둘째 고혈압, 당뇨, 고지혈 같은 기저질환이다. 다음으로 흡연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보자. 가족력, 고혈압 같은 기저질환은 선천적인 경향이 짙다. 다시 말해 본인의 잘못으로 규정하기엔 환자가 억울할 수 있다. 조심하면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흡연이다. 흡연은 100% 본인 잘못이다. 담배를 안 피우면 되는데 그걸 못 참는 거니까. 여기에 스트레스도 심혈관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인데 중장년 계층이 이러한 위협조건에서 가장 취약하다. 평생 일만 하고 운동은 ‘숨쉬기’ 정도만 해왔고 위로, 아래로 낀 세대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4050 시기가 심혈관 건강을 유지하는 최적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 말씀은 반대로 말하면 4050 시기야말로 심혈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기라는 건데.
“그렇다. 40세의 심혈관 상태가 나빠지기 전인 30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 혈관은 하수도 파이프란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파이프도 수십년 간 수돗물이 흐르면 녹이 슬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건강했던 혈관도 노화가 진행되면서 녹이 슨다. 노화의 과정은 곧 동맥경화의 과정이다. 심혈관 상태를 개선 시키기는 어렵지만 경화 과정을 지연시킬 수는 있다. 그것이 심혈관 건강 관리의 핵심이다.”
인터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수련의가 임 교수를 찾아왔다. 응급환자가 병원으로 실려오면서 임 교수가 자리를 떴고 인터뷰는 잠시 중단됐다. 잠시 후.
-응급환자가 들어왔나 보다.
“50대 여성환자분이 들어왔다. 부정맥이 발생해서 큰 병원으로 오신 거다. 아까 어디까지 말씀을 드렸더라. 아, 이어서 말씀 드리면 제 환자 중에는 70대가 가장 많다. 심혈관은 나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아까 4050 시기에 심혈관 건강에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의학기술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었다. 60세 전에 은퇴한다고 치면 죽기 전까지 30년 동안은 건강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은퇴 후에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건강하게 여생을 보낼지는 4050 시기에 어떻게 자신의 몸을 대하는 지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목격하는 서글픈 광경이 있다. 장년의 환자가 몸이 아픈데 치료하는 과정에 보호자가 오지 않더라. 가족들, 특히 자식들이 해외에 거주해서 오지 못한다는 건데 건강 생각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치고는 너무 슬프지 않나 싶더라.“
-심혈관 건강의 최대 적으로 흡연을 들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심혈관에 있어서 흡연은 쉽게 말해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흡연하는 분들에게 담배 끊으라고 해봤자 말 안 듣는다. 금연 스트레스 받느니 피우면서 스트레스 안 받겠다, 고 하는데 바보 같은 소리다. 또 다른 이상한 말 중 하나가 금연하면 살 찐다는 이야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싫으면 지금 당장 담배 끊어야 한다.
담배를 피면 폐 건강에 나쁘다고 많이 생각하는데 사실 흡연은 방광에 가장 안 좋고 그 다음이 심혈관이다. 담배의 독성이 방광에 먼저 악영향을 끼치고 혈관에 쌓여 몸을 망친다.
담배 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안다. 스탠트 시술할 때는 의식이 깨어 있다. 수술 중에 환자한테 “이래도 담배 피우실 거에요?”라고 물어보면 절대 안 핀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1년 즈음 지나면 또 다시 흡연하는 경우 많다. 담배 끊으려면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드리면 4050 중장년이 건강하다가 갑자기 죽었다고 하면 십중팔구 심근경색이라고 보면 된다. 심혈관 질환은 그만큼 무서운 병이고 평상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아무래도 흡연자 중에는 남성이 많다. 심혈관 질환에서 남녀구분이 따로 있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여성분들의 경우 갱년기 전까지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질환이 거의 없다. 그러다 갱년기를 지나 호르몬 분비가 달라지면 그때부터 심혈관 취약층이 된다. 연세 높은 할머니들 중에서 심혈관 질환 발생률은 남성과 거의 비슷하다.”
-비만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 비만과 심혈관 건강은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비만은 미용이 아닌 건강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비만은 질병이다. 과도한 다이어트도 몸에 좋지 않지만 비만은 더욱 안 좋다. 비만 시 발생하는 호르몬이 당뇨, 고혈압을 유발한다.
생각해보라.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몸에 걸맞은 크기의 심장을 갖고 있다. 비만이 되면 티코 엔진에 에쿠스 차체를 가진 꼴이 되는 건데 이게 과연 잘 굴러갈 수 있을까? 과부하에 걸릴 수밖에 없는 거다.“
-심혈관 질환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게 됐다. 중요한 것은 예방법인데 평상시 생활에 접목 시켜달라.
“제일 쉬운 방법은 계단을 올라보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계단을 오르면 숨이 가빠오는데 그 정도에 따라서 심혈관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빨리 가빠지면 그만큼 심혈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거다.
계단을 오르면 맥박수가 빨라지고 이때 심근이 요구하는 산소와 피가 많이 필요하다. 이걸 따라가 줘야 하지만 혈관이 좁으면 이때 통증이 생긴다. 계단을 오를 때 발생하는 통증만 잘 관찰해도 심혈관 건강 정도를 조기진단할 수 있다.
두 번째, 심혈관 질환은 생활 속 운동으로 큰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직장인들이 늘 하는 말이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하지.
우리 병원 교수님 중에 21층 꼭대기까지 늘 걸어올라 가시는 분이 계신다. 시간을 내서 운동하는 거다. 계단을 내려오는 건 무릎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도 된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건 무조건 좋다.“
-생활 속 실천이 중요하다는 거네. 생활이란 게 습관이 된 것이어서 고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 다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환자들한테 강조하는 또 다른 것이 커피 타임을 갖지 말라는 거다. 중장년 남성들의 커피 타임을 보면 흥미로운 게 있다. 주로 믹스커피를 마시거나 커피 마시면서 담배까지 핀다는 거다. 둘 다 심혈관 질환엔 최악이다.
-오늘 좋은 이야기 감사하다. 당장 계단 오르기부터 실천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마지막으로 라이프점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해주시라.
“심혈관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다. 건강검진 받을 때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암진단인데 심혈관 건강은 그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건강검진에서 이상 없다고 나와도 오늘 찾아오는 것이 심혈관 질환이다. 급사자들이 많은 이유다. 아까 했던 조언대로 심혈관 건강은 평상시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고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예전과 다르게 숨이 차거나 가슴이 조여온다면 그건 100% 심혈관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보면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담배 끊으시고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하면서 심혈관 건강을 유지하시길 바란다.“
/박해욱 기자 서민우기자 spooky@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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