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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돈 되게’ 만든 남자…이번엔 시(詩) 입은 한글 패션 백으로 일 냈다

[주기윤 아트피버 대표 인터뷰]

무색무취 소품을 컬래버로 대중 아트로 승화

마리킴, 밥장, 잭킴, 달보라 등 무명을 스타로

‘7번 완판’ 경험 앞세워 나태주 시인과 컬래버

수익금 전액으로 무료 한글 폰트 개발해 한글날 배포





2002년 어느 가을 극동방송에서 홍익대학을 지나던 차 안에서 주기윤 아트피버 대표는 홍대 인근 외벽에 “그림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어”라고 쓰인 새빨간 라카로 흩날린 글귀를 보고 신선한 충격에 빠진다. 홍대 미대생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처절한 혈서가 매너리즘에 빠져 헤매던 그의 가슴으로 훅 들어왔다. 매일 이 곳을 지나면서 주 대표는 그야 말로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젊은 작가를 꿈꾼다. 미술대학에서는 팝아트는 경시하고 클래식과 철학 만을 논했던, 미대생들은 졸업 후 노가다로 밥벌이를 해야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절이었다.

순수 미술에 갇혀있던 아트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 위한 주기윤 대표의 꿈은 그렇게 태동했다. 주기윤 대표를 수장으로 한 마케팅&프로모션 전문회사인 리더스컴은 2008년 5월 세운 아티스트 기획사이자 아트 컬래버레이션 브랜드인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한다. 이에 앞서 주 대표는 2005년 ‘휴먼 브랜드’ 전략과 함께 예술가를 브랜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술가도 발품을 팔고 홍보해야 ‘잘 먹힌다’는 게 골자다. 작품 보다 인간 자체를 브랜딩하고 알리면 작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이 때부터 그는 간절함, 성실함, 작은 재능 삼박자를 갖춘 아티스트를 찾으러 다녔다. 처음 소개 받은 작가는 후에 밥장으로 유명해진 장석원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 ROTC 출신의 평범한 회사원이 삶을 살다가 IMF를 변곡점으로 굴곡 있는 삶을 연명하며 생활의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버티고 있던 그였다. 그로부터 전달 받은 70장의 작품은 펜화로 성실하게 꼬물꼬물 그린 그림들.

“1달 정도 지났는데 그림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어요. 어른들의 그림책을 보듯 말이죠. 슬픔과 환희, 애환, 고통…. 1호 아티스트로 장석원씨를 정한 후 브랜딩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티스트 브랜딩 기업이 되었지요.” 주 대표는 장씨에게 하루 2장씩 그림을 그릴 것을 주문하고 책을 기획했다. 싸이월드가 유행이던 때 주 대표는 일찌감치 블로그를 시작했다. 성실히 블로그에 올린 그림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밥장은 파워 블로거가 되어갔다. 책이 나오고 전시회도 열었다. 당시 안국동 토피 하우스에서 열린 전시회는 5,000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80% 작품이 팔려 나갔다.



“그야 말로 빵 뜬 거죠. 젊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오면서 적금을 깨서 작품을 산 친구들도 생겨나고…. 휴먼 브랜딩 전략이 먹히자 글쓰고, 칼럼도 쓰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어요. 밥장이 뜨면서 회사도 유명세를 탔습니다.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장삼이사들이 몰려 들었어요. 학력, 나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간절하고 절실한 20명을 모아 탄생한 그룹이 바로 ‘아트피버’입니다.” 주 대표는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온리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의자, 테이블, 헬멧, 공 등 무색으로 되어 있는 유명 브랜드를 구입해 작가들에게 이를 새롭게 덧입힐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는 국내 처음 룩북 콘셉트로 이들을 모아 ‘온라인 갤러리’를 만들었고 매일 서버가 다운됐다. 다수의 브랜드로부터 컬래버레이션 러브콜이 들어온 것은 이 때부터. 코오롱FnC, 삼성전자, BMW 미니 등 아트피버와 손잡지 않은 대기업은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주 대표는 “여러 명과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아티스트들이 하나같이 나만 사랑받기 원하기 때문에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는 낙오자들이 생겨났다”며 “마리킴, 밥장, 잭킴, 달보라 등이 살아 남으면서 이들은 아트피버라는 브랜드를 달고 의류, 가방, 디자인 문구, 소품 등을 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게 히트를 친 것은 다름아닌 가방이었다.







“여성들이 가방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가방에 개성을 담고 그녀들이 당당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자고 기획을 하게 된 거죠. 그가격은 20만원으로 고정하고 그림이 들어간 가방을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판매 채널로 홈쇼핑을 선택해 유니크한 가방으로 7번 완판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지요”

2020년 6월, 이번에도 히트 제조기 주 대표는 가방을 선택했다. 새로운 개념의 한글 아트 가방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 대표는 과거 다양하게 컬래버레이션을 했던 코오롱 FnC 출신의 조은주 워터멜론플래닝 대표와 손잡고 최근 ‘가방. 한글을 입다’는 콘셉트의 한글을 조형화 한 가방을 선보였다. 20년간 몸담은 대기업의 시스템과 기획에 능통한 조 대표와 주 대표의 크리에이티브가 더해지면서 이들은 또 한 차례 대박을 예고했다. 두 대표는 인기 있는 나태주 시인의 대표작 ‘내가 너를’이란 시에 글씨 예술가 강병인 작가의 감각적인 필체를 최신 유행소재인 탑포린에 베지터블 천연 가죽으로 구성한 토트백 스타일로 구성해 냈다. 이 토트백은 스타일리스트에게 던진 질문에서 시작됐다. ‘발명품 1위가 한글인데 왜 패션에 한글을 첨언하지 않는가’. 답은 한글은 직관적으로 읽히기 때문에 영 촌스럽다는 것. 한글이 디자인적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일단 패턴처럼 느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장을 깨지 말고, 직관적으로 읽히게, 그렇게 한글의 조형화로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조은주 대표는 “이 3가지 기준으로 캘리그래퍼인 강병인 작가가 떠올랐던 거죠. 한글을 가장 멋지게 만드는 사람 같았습니다. 직관적으로 읽히려면 시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에 대한 시를 잘 쓰는 작가를 찾다가 거장 나태주 시인을 만나게 된 거고요”라고 설명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방의 판매 수익금이 한글 폰트 개발에 쓰인다는 사실. 다온폰트와 제작한 새로운 한글 폰트는 10월9일 한글날 무료로 배포될 예정이란다. 이미 외국인들로부터 격한 반응을 얻고 있는 이 한글 아트 토트백은 중국 소재 편집숍 ‘가로수’에도 입점한다. “한국인 시인이 쓴 한글 가방을 중국인들이 매고 다닌다면 이것이야 말로 문화 역전이 아닌가요. 한글을 세계로 내보내는 새로운 목표가 또 하나 생긴 셈이죠.”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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