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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침묵하는 자연 닮은 무채색 집과 교회, 대청호를 품다

■ 문의주택+그루터기 교회

드러냄 최소화한 겸손한 건축

교회의 상징 종탑·십자가 없어

자연과 어울리는 수평의 공간

안정감 주는 집, 문화공간 된 교회

내·외부 경계 없애고 중정 설치

사랑방같은 모임 장소로도 기능

해질 무렵에 내려다본 문의주택과 그루터기 교회의 전경. 홀로 도드라지지 않는 무채색으로 외관이 꾸며진 탓에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사진제공=박영채 사진작가




완만한 산줄기에 기대 고즈넉하게 형성된 충북 청주 문의면의 한 마을. 대청호 조성으로 수몰된 지역민들을 위한 이주 마을이다. 이 평온한 농촌 마을 중앙에는 정방형 모양의 건물 두 개가 맞닿은 무채색 건물이 보인다. 단조로운 마을 안에서는 꽤 눈에 띄는 건물이지만 실제로 마을에 들어서면 시선을 확 끄는 건물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교회와 목사 부부가 사는 집으로 구성된 이 단층 건물은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누그러뜨린, 그래서 아름다운 주변 환경과 마을 속에서 모두와 어울리는 하나의 조연처럼 보인다.

건물을 설계한 ‘모노건축사사무소’의 정재헌 건축가는 “가끔은 큰 목소리보다 침묵이 더 큰 메시지와 감동을 준다”며 “새롭게 지은 집 같지 않고 주변 동네 작은 집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것 같은’ 집과 교회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드러냄 최소화한 겸손한 건축…“자연과 어울린 수평의 공간”>

대부분의 시골 교회는 주가 되는 교회가 있고 그 부속으로 딸린 사저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숨은 경우가 많다. 역할상 교회가 중심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의주택과 그루터기 교회로 구성된 이 단층 건물은 오히려 반대다. ‘집’이 메인이고 ‘교회’가 그 안에 포함되는 형태다.

서울에서 살던 건축주 부부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살 집을 짓기로 했다. 여기에 목회활동을 하는 부인을 위해 20여 석 규모의 작은 마을 교회를 함께 설계했다. 전체적인 형태로 보면 집과 교회는 거의 동등한 규모다. 대지면적은 그루터기 교회(1,218㎡)가 문의주택(660㎡)보다 더 넓지만 연면적으로 보면 문의주택(287㎡)과 그루터기 교회(246㎡)가 비슷한 수준이다.

설계를 맡은 정 건축가는 이 건축물이 자연·마을과 어울리는 수평의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지역 사회와 함께하고 기독교인이 아닌 주민들도 환영할 만한 ‘열린 교회’로 설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건축주 부부 또한 이 구상에 대부분 공감했다. 그렇게 탄생한 교회는 일반적인 교회가 갖춘 높은 종탑이나 십자가 없이 드러냄을 최소화한 겸손한 건물이 됐다. 건축가의 말을 빌리면 “교회 같지 않은 교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담는 교회”다.

건물이 위치한 마을 주변에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있다. 일대 주민들의 식수원 역할을 하는 대청호까지 있어 인근 가로를 군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수십 년이 흐르다 보니 이 근방은 풍성한 나무로 자연 조경이 이뤄지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게 됐다. 아름답고 정갈한 환경에 반한 건축주와 건축가는 집과 교회를 자연에 완벽하게 녹아들도록 하고 싶었다. 주변 자연환경이나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건축물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 문의주택과 그루터기 교회는 무채색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과 질감·풍경을 받아들여 표현하는 데 가장 어울리는 색감이다.

그루터기 교회의 모습. 외관은 무채색의 콘크리트로 꾸며졌지만 실내와 맞닿는 부분은 목조 구조로 이뤄져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자갈이 깔린 연못 형태의 중정 내 ‘물의 정원’은 풍성한 자연의 경관을 담았다. /사진제공=박영채 사진작가


교회 내부는 목조로 마감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공간은 교회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게 설계됐다. /사진제공=박영채 사진작가


<안정감 주는 집, 문화공간 된 교회>

두 건물은 얼핏 비슷하게 생겼지만 공간 구성과 재료가 달라 확연히 구분된다. 문의주택은 동서 방향으로 경사를 따라 긴 마당을 품은 경사 지붕으로, 교회는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마당을 품은 평지붕으로 디자인됐다.



중정을 두고 ‘미음(ㅁ)’자 모양인 집은 밖에서 보면 별도 건물로 쪼개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가 연결돼 있다. 동선을 따라 집 전체가 연결된 구조다. 중정의 정원은 자갈을 깔고 수목을 세워 풍성한 자연을 담은 듯 보인다. 거실 양옆으로 커다란 창이 나 있어 주변 환경이 그대로 배경을 이루는 모습이다. 각 방은 하얀 벽과 짙은 우드 바닥이 조화를 이뤄 안정감을 준다.

반면 교회는 하나의 외벽으로 통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교회와 기도실·사무실·식당으로 공간이 나뉘어 있다. 크기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스무명 남짓이 앉으면 가득 차는 정도다. 교회는 내·외부의 경계를 없애 마치 자연에서 예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했다. 외부의 차가운 콘크리트 소재에 비해 교회 내부는 나무로 마감해 차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에 교회 안에 설치된 ‘물의 정원’은 차분하고 정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곳은 ‘교회’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교회라는 생각도 잘 들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애초에 교회 역할뿐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공간을 구상했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교회이지만 하나의 문화공간으로서 어떻게 동네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농촌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며 “주민들의 모임의 장소로서 기능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조용한 마을에 큼지막하고 화려한 교회가 들어올까 겁냈던 마을 주민들도 결과물을 보고 크게 만족하는 모습이다. 종교와 관계없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원처럼 보이도록 조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문의주택과 그루터기 교회가 들어서기 전에는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던 곳이지만 이제는 주민 누구도 휴지 조각 하나 버리지 않는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관리된 조경을 보면서 마을 주민들은 흐뭇함을 얻었다.

건축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건축이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존재감 없이 자연을 그대로 내비치는 모습을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건축주 부부가 사는 ‘문의주택’은 위채와 아래채로 구분된 형태로, 주변 자연환경과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설계됐다. /사진제공=박영채 사진작가


문의주택 내부는 거실·식당 등 공동 생활공간으로 구성된 아래채와 독립된 공간인 위채로 나뉘어져 있다. /사진제공=박영채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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