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혁신이 왜 안 되는 걸까요? 말로만 해서 그렇습니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어서 그런 겁니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과 교수가 1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워커힐서울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0’에 강연자로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산업 현장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현장, 시장, 산업과 연결되지 않은, 말뿐인 혁신을 해서 다람쥐 쳇바퀴를 돈 것”이라고 현 산업계를 비판했다. 그간 한국 산업이 현장에서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개발(R&D) 투자 현황 관련 통계를 제시하며 한국 기업의 R&D 투자가 ‘인풋(input)’은 훌륭하나 ‘아웃풋(output)’은 그렇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R&D 집중도(R&D intensity)는 세계 1위인 반면 상업화는 43위, 상업적 부가가치 창출은 20위”라며 “다른 국가에 비해 아웃풋이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가 지속된 데는 산업 현장보다 논문을 중시하는 이공계의 현실이 크게 작용해왔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 이공계 박사 80% 정도는 대학 연구소에 있는데 다들 앉아서 논문만 쓴다”며 “이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대로 된 기술 혁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혁신이 가능한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상업화, 시장, 고객, 돈, 그리고 기업가가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다”면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혁신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도 여러번 강조했다. 그는 “혁신은 중요하고 기업가 정신은 더 중요하다. 이 두 개는 절대 분리가 안 되는 한 몸”이라며 “두 개가 연결돼야 진정한 기술 혁신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이 잘 발휘된 예로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를 지원한 기업가 매튜 볼턴을 꼽기도 했다. 박 교수는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시작은 녹록지 않았지만 볼턴이 여기에 투자를 했다”며 “와트가 산업혁명의 선구자로 기록돼 있는데 그 저변에는 볼턴의 기업가 정신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고용 상황을 지적하며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고용 구조는 정확하게 양극화돼 있다”며 “대기업에서 일부를 고용하고 80% 이상을 영세기업들이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경쟁력을 가지고 고용을 해줄 중간 계층의 기업이 거의 없다”면서 “고용 구조는 산업 구조와 관련되므로 기업을 키우는 게 국가가 사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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