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을 찾지 못해 은행에 대기 중인 돈이 한 달 만에 24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정기 예·적금 잔액은 또 다시 10조원가량 줄었다. 수신금리가 0%대로 떨어지면서 은행 예·적금의 매력이 떨어졌지만, 경기 불확실성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요구불예금으로 쌓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582조6,976억원으로 전달보다 24조5,076억원 급증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올 들어서만 반 년 만에 89조원 가까이 불어나 지난해 연간 증가액(55조6,564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5대 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6월 말 기준 672조153억원으로 전달보다 10조1,690억원 줄었다. 정기 예·적금 잔액은 4월(-2조7,278억원)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3개월 연속 감소폭이 매달 두 배 가까이 뛰고 있다.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식 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MMDA) 등 예금자가 언제든 찾아 쓸 수 있는 예금을 뜻한다. 일정 기간 돈을 묶어놔야 하는 정기 예·적금과 달리 자금을 자유롭게 넣고 뺄 수 있는 대신 금리는 연 0.1%대로 사실상 이자가 붙지 않는다. 때문에 이 예금이 늘면 대기성 자금이 늘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의 경우 분기 말을 맞아 결제 수요가 많은 기업의 요구불예금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영향도 있다. 하지만 이런 통상적인 요인을 감안해도 최근의 증가세는 이례적이다. 실제 지난달 요구불예금 잔액의 전월 대비 증가율은 4.4%로 지난해 같은 기간(2.6%)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 A은행 관계자는 “경기 불확실성이 크고 이렇다 할 투자처도 마땅치 않다 보니 언제든 돈을 이동할 수 있는 요구불예금에 계속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사상 첫 0%대로 진입하면서 은행 정기예금의 매력이 떨어진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말 기준금리를 연 0.5%로 내리면서 올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했다. 이후 은행들도 잇달아 수신금리를 내리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기본금리는 연 0.4~0.85%까지 떨어진 상태다. 우대금리를 다 합쳐도 1%대 이자를 받기 어렵다. B은행 관계자는 “통상 1년 단위로 정기예금을 재예치하던 고객들도 올해는 만기가 된 자금을 재예치하는 대신 일단 수시입출식 예금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다”며 “저축성 수신의 잔액이 급감하는 동시에 요구불예금이 늘어나는 것은 저금리 영향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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