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만 해도 인수합병(M&A)과 매각설 등 온갖 소문이 돌던 이커머스 업계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이커머스 업계는 거래 규모가 성장하는 가운데 여러 업체가 적자를 감수한 무한 경쟁을 펼치는 곳이어서 소문도 늘 무성했다. 그러나 최근 수 개월은 특별한 얘기 없이 지나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업계 구도가 안정됐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거대한 변화를 앞둔 폭풍전야라는 것이다.
◇각자 갈 길 정해 구도 안정?=이커머스 업계 구도가 안정세로 들어간 탓에 조용해진 것이라는 분석은 쿠팡이 지난 4월 2019년 감사보고서를 내면서부터 나왔다. 쿠팡은 감사보고서에서 2019년 영업적자가 전년보다 36% 줄어든 7,205억 원이라고 밝혔다. 감사보고서 제출 전에는 쿠팡의 2019년 적자가 1조7,000억 원 선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으나 실제 적자는 7,205억 원이었다. 업계의 예상보다 훨씬 적자가 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쿠팡의 ‘자금고갈설’ 또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지난해 일부 대형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은 쿠팡의 자금 고갈을 예상하고 2020년에는 이커머스 업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쿠팡은 현재의 사업에 집중하면서 미국 증시 상장 또는 추가 자금유치를 시도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대주주의 지분 매각설이 나오던 티몬은 올해 연 단위 흑자 달성과 내년 특례 상장을 분명한 목표로 설정하면서 대기업 인수설이 쏙 들어갔다. 위메프는 지난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면서 현재 앞으로 어떠한 전략을 구사해 나갈지를 심사숙고하는 중이다. 11번가는 흑자경영을 목표로 규모와 손익의 균형을 추구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쿠팡의 자금이 고갈되고 다른 업체 중 일부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매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면서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 누구도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각자의 살 길을 찾아낸 것이 현재까지 드러난 구도”라고 말했다.
롯데쇼핑이 롯데온(ON)을 론칭한 것도 이커머스 업계를 조용해지게 만든 요인이다. 지난해만 해도 항간에는 롯데가 이커머스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기존 업체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롯데가 기존 오프라인 유통과의 시너지를 노리는 형태의 이머커스 사업 목표를 공개하고 롯데ON을 띄우면서 지난해 돌던 관측은 완전히 무색해졌다.
한편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한국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일하게 장기적으로 흑자를 이어가는 기업이다. 한때 대주주인 미국 이베이가 이베이코리아 지분을 매각한다는 설이 나왔지만 이베이코리아는 거듭해서 이 얘기는 가능성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일각선 “폭풍 전의 고요”=일각에선 이커머스 업계가 뭔가 큰 변화를 앞두고 조용해졌다고 말한다. 뭔가 큰 구상이 물밑에서 암중모색되거나 업계 최고위층 인사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큰 작업이 벌어지고 있기에 요즘같은 고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측이 사실이라면 모색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일은 M&A나 투자다. 오프라인 유통 업체 중 한 곳이 전략을 바꿔 이커머스 업체 한 곳을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를 통해 전략적 제휴를 맺는 시나리오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오프라인 유통의 강자가 온라인 시장까지 장악한 경우는 별로 없다. 미국 아마존에 밀려 오프라인 유통업자들이 파산하듯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온라인 시대에 길을 헤매는 일이 더욱 흔하다. 이러한 사례를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장서 자리잡은 온라인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들어 쇼핑 분야를 부쩍 강화하고 있는 네이버가 이커머스 시장의 판을 바꾸기 위해 물밑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베이코리아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그만한 가격의 매물을 인수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네이버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자금 투자와 함께 전략적 제휴를 할 수 있는 업체 또한 네이버밖에 없다는 얘는 오래 전부터 돌았다.
그러나 정보기술(IT) 업계는 금융투자업계의 이같은 전망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낸다. IT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강점을 가진 ‘검색’의 활용범위를 확대하는 개념에서 쇼핑 사업을 강화하는 것이지 전자상거래 자체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중국 알리바바가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해 한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뛰어드는 시나리오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얘기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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