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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콘텐츠진흥원장 "K콘텐츠 전략, 집단 소비보다 '개인화 수요'에 맞춰야"

[서경이 만난 사람]

비대면 경제 확산 등 코로나로 달라진 환경 대응할 정책 필요

콘텐츠기업 80%가 영세...예산 적재적소에 써 성장 견인을

수출 100억弗 중 67%가 게임...콘텐츠산업 체질개선도 숙제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지난 10년간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분야를 꼽으라면 콘텐츠 산업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게임·방송·대중음악 등을 아우르는 콘텐츠 산업의 전체 매출액은 119조원(2018년 기준) 이상이며 수출액은 10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반도체 다음가는 성장세인 콘텐츠 분야에 대해 “우리의 미래 먹거리”라며 콘텐츠 산업 3대 혁신전략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16% 이상의 수출 성장세를 보이며 ‘무풍지대’ 같던 콘텐츠 산업 역시 누구도 겪어본 적 없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앞에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의 ‘비욘드 라이브’, 방탄소년단(BTS)의 ‘방방콘’ 등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언택트 공연은 수백억원대 티켓 수익으로 이어지며 코로나 시대 K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한숨만 쉬는 대신 주목할 게 있습니다. 집단적 소비 양태에서 ‘소비의 개인화’로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요자는 이제 자신이 편한 시간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미디어로 콘텐츠를 봅니다. 코로나19가 이 같은 변화를 앞당기는 방아쇠 역할을 했으니 이제 개인화된 수요자 측면에서 콘텐츠를 봐야 합니다.”

지난 2017년 말 취임해 2년 반 이상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하 콘진원)을 이끌어온 김영준 원장은 최근 서울 중구 콘텐츠코리아랩(CKL) 기업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껏 ‘디지털경제’ ‘문화기술(CT)’을 미래의 성장가치로 여겼다면 이제 그 미래를 현재로 당겨와 새로운 산업으로서 가치부여를 하고 힘을 불어넣어줘야 한다”며 ‘수요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과 정책 변화를 거듭 강조했다. /대담=신경립 문화레저부장 klsin@sedaily.com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권욱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생활 전반이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경제 주축이던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은 심각한 타격을 입은 데 반해 콘텐츠 산업 분야는 소비·유통 방식의 발 빠른 전환 덕에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정상 궤도로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김 원장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영화·공연·전시 업계가 큰 피해를 봤고 방송 업계도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도 “반면 ‘집콕’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게임,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의 방송영상 플랫폼, 캐릭터 및 완구 시장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줬고 온라인 플랫폼 기반 장르인 웹툰·웹소설이 새 기회를 맞았으며 빅히트·네이버·SM 등이 진행한 ‘언택트 공연’은 새로운 공연 모델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더불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정부의 3차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되면서 ‘한국판 뉴딜’의 연장선에 있는 ‘콘텐츠 뉴딜’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졌다.

“콘텐츠 뉴딜은 두 가지 영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과 결합된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개발해 일상적 소비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선도적 역할입니다. 또 하나는 ‘공공데이터’에 관한 것인데 이것이 ‘콘텐츠 뉴딜’의 핵심에 더 가깝습니다. 공적자원시스템을 구축해 공공데이터를 확보·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공공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작 지원과 데이터 구축을 추진하면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기적 일자리일 수 있으나 산업 분야 특성상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상시적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느리지만 언젠가는 추진해야 할 일들입니다.”

아직은 추상적인 구상안으로 여겨지기도 하나 ‘새로운’ ‘공공의’ 콘텐츠를 제시한다는 방향성은 철저하게 ‘수요자’를 향해 있다. 단 그 수요란 소비자뿐 아니라 창작·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겨냥한다. 김 원장은 “향후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변화는 비대면 환경에 맞춰 온라인을 중심으로 보다 다양한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라며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 생산과 소비의 개인화를 가속화해 모든 생산자와 수요자들이 무한 창작과 소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례로 ‘5세대 이동통신(5G)’의 신개념 경제 고속도로가 확충될 날이 머지않았지만 그 도로를 어떤 외양과 기능, 특징과 매력을 가진 자동차로 달릴지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고민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아직 미래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어떤 특색 있는 자동차를 제시하고 무엇을 선택하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콘텐츠 산업의 앞날과 직결돼 있다. 그래서 김 원장은 근본적인 질문을 되짚었다.

“콘텐츠의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요? 결국 문화예술이 가진 긍정적 기능입니다. 힐링과 위무(慰撫), 공감능력의 확장과 연대의식의 고취 같은 것 아닐까요? 콘텐츠 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이유는 일상화된 콘텐츠를 통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콘텐츠가 국민의 일상을 얼마나 변화시켰나 자문해야 하고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펼쳐야 공급자들이 발맞춰 따라갑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콘텐츠 뉴딜’은 문화격차 해소에 관해서도 집중해야 하는데 지원책으로 바우처사업을 펼치기 전에 그 바우처로 구입할 수 있는 ‘수요가 되고 살 만한’ 콘텐츠가 있어야 하죠.”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권욱기자


2009년 정식 출범한 콘진원이 개원 10주년을 넘기며 그간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가 구축됐고 그 중요성을 대내외에 알린 것은 큰 성과지만 김 원장은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그는 “콘텐츠 산업의 매출 규모가 125조원으로 조선업의 3배이고 자동차 산업의 1.2배라는 점, 콘텐츠가 한류를 대표하면서 푸드·의료·뷰티·관광 등 연계산업이 한류의 직간접 영향으로 동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큰 보람”이라면서도 “콘텐츠 분야의 전체 일자리 수는 프로젝트성 임시직까지 반영해 64만~67만개 수준인데 그마저도 이직율이 높고 콘텐츠 기업의 80%가 영세기업이라는 점 등은 1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콘텐츠 산업은 기존 제조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1,000만원을 연구개발(R&D)로 투자하면 1,200만원 수준의 성과가 곧장 나오는 게 아니에요. 1,000만원을 지원했는데도 수년간 즉각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기업의 미래를 기다려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콘진원의 연간 예산 4,600억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적재적소에 쓰여 성장동력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계별 패키지로 묶어 성장주기별 지원을 시행해야 ‘제대로 성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회성·소액다건 지원에서 탈피해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모색해야 해요. 결국 콘텐츠 산업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된 듯하나 본격 실행 단계에 대한 고민과 인식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콘텐츠 산업을 정부의 ‘시혜적 지원’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되고, 지원과 진흥을 상호 보완적으로 병행해갈 때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콘텐츠 산업 내부의 문제만 보자면 ‘체질개선’이 숙제다. 2019년 콘텐츠 수출액 추정치는 100억달러를 넘겼지만 그중 67%가 게임이다. 전체 11개의 콘텐츠 분야 가운데 애니메이션 등은 성장 정체의 취약 장르로 꼽힌다. 대중음악의 활약이 괄목할 만하나 일부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한 K팝 콘텐츠로의 매출 쏠림이 크고 연예 산업 대부분은 극도로 영세하다. “컨버전스(convergence), 즉 장르 간 융합으로 기존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장르가 새 수요를 만들고 거기에 사업과 예산이 발맞춘다면 좋겠다”는 김 원장은 “4차 산업을 내다본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등은 실제 피부로 와 닿는 개념이지만 우리의 융합콘텐츠·실감콘텐츠는 설명할 수는 있으나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콘텐츠 시장을 정부가 ‘키워보려’ 했던 것부터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콘텐츠 분야의 특성상 수요를 파악하고 공략하기에는 민간기업이 더 기민하고 유리할 수 있다. 콘진원이 롯데월드와 ‘테마파크 수요맞춤형 콘텐츠 공동기획·발굴 및 중소 콘텐츠 기업 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해 지적재산권(IP) 개발에 나선 것이나 CJ ENM의 50억원 기금을 받아 신용보증기금의 협약보증으로 음악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금융지원 펀드를 마련한 것 등은 민간협력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콘텐츠의 가치가 확장될수록 콘진원의 역할도 커지고 위상이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김 원장은 신중하고 반성적이다. 그는 “외국의 문화산업계는 모태펀드, 신용보증기금 운영 정도가 정부기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종종 ‘너희는 어떻게 세금으로 이 같은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하느냐’고 묻기도 한다”면서 “국고에 기반해 안정적으로 산업 진흥을 유도할 수 있는 반면 국고가 가진 경직성 때문에 기동성이 떨어지고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해 산업 환경의 실질적 수요와 괴리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2년여 동안 기관장으로서 현장과 정책을 두루 살펴본 김 원장은 중장기적 목표의 하나로 ‘콘텐츠산업진흥기금’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정책 행보가 탄력적이고 규모가 큰 이유를 그는 ‘기금’의 유무에서 찾은 것이다.

“우리도 ‘콘텐츠산업진흥기금’ 같은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방송통신진흥기금·관광진흥기금이 있고 문예진흥기금도 고갈 위기를 극복하고 1,100억원의 기금을 확보했습니다. 물론 기금도 국민의 세금에서 나와 국회 심의를 받고 부처의 관리·감독을 받는 것이지만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려면 기금 운용이 유리하고 이를 통해 콘진원의 역할을 재조정해야 그 위상도 달라지고 우리 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내다봅니다.”
/정리=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권욱기자


◇He is...



△1962년 경북 의성 △1981년 대구 영신고 졸업 △1989년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졸업 △2010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졸업 △1996~2013년 ㈜다음기획 대표이사 △2010~2012년 한양대 겸임교수 △2014~2017년 세한대 교수 △2016~2017년 고양문화재단 이사 △2017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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